잊지 못할 천도재 사연

집착이 부른 죽음

by 현루

​사찰의 공기는 계절마다 다르지만, 유독 무겁게 가라앉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천도재(薦度齋)’가 예약되어 있다.


절에는 수많은 법회와 불공이 있지만, 천도재는

그 결이 사뭇 다르다. 그것은 산 자들의 축제가 아니라, 떠난 자의 무거운 발걸음을 가볍게 돌려세우고 남은 자의 찢긴 마음을 꿰매는 ‘이별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천수를 다하고 떠난 어르신들의 영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시린 사연을 품고 법당의 문을 두드리는 영가들도 있다.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져버린 어린 학생, 결혼식장 대신 장례식장으로 향한 예비 신부,


그리고... 잘못된 사랑의 끝에서 스스로 생의 끈을 놓아버린 이들.
​그 수많은 그림자 중에서도 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남은 한 남자의 사연이 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잔혹한 집착’에 관한 기록이다.


다시 만난 인연, 그 불길한 서막


​그녀가 처음 절을 찾아왔을 때, 나는 그녀의 눈을 보고 직감했다.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육체는 이곳에 있었으나, 그녀의 영혼은 이미 누군가에게 단단히 붙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퀭한 눈등과 떨리는 손끝, 그리고 낯선 그림자가 그녀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다.


​그녀의 사연은 서글펐다.

유부녀였던 그녀를 사랑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푸르던 청년 시절, 잠시 연인으로 지냈던 사이였다. 누구나 그렇듯 열병 같은 사랑을 했고, 어떤 이유에선지 헤어졌다. 삶은 각자의 방향으로 도도하게 흘러갔다.

남자는 결혼하지 않은 채 고독을 벗 삼아 홀로 살았고, 여자는 평범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다.
​세월이 강물처럼 흘러 남자는 타지 생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침 여자의 가족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하여, 부모님이 물려주신 사과 과수원을 일구며 살고 있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시골 마을이었다.
​비극은 고향 동창회라는 평범한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다시 만났을 때, 여자는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이미 수십 년 전의 일이었고, 자신은 가정을 지키는 아내이자 어머니였으니까. 그저 옛 친구를 만난 반가움에 몇 번 차를 마시며 안부를 물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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