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믿었던 것들의 실체
우리는 흔히 "내가 존재하고, 그다음에 세상이 있다"라고 믿는다.
'나'라는 견고한 성을 쌓아두고, 그 성벽 너머로 타인과 환경을 관찰한다.
하지만 《화엄경(華嚴經)》은 이 근본적인 믿음에 균열을 낸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실상 고정불변한 실체가 아니라, 다섯 가지 요소가 잠시 모여 흐르는 구름과 같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를 불교 철학에서는 오온(五蘊)이라 부른다. 색(色, 육체), 수(受, 감정), 상(想, 생각), 행(行, 의지), 식(識, 분별하는 마음)이라는 다섯 가지 그림자가 겹쳐지며 만들어낸 환영(幻影)이 바로 우리가 집착하는 '자아'의 정체다.
현대인들이 겪는 수많은 고통의 밑바닥에는
이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고 방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나의 경력, 나의 재산, 나의 명예"라는 성벽이 조금이라도 깎여나가면 마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화엄의 시선에서 보면, 이는 흐르는 강물 위에 새겨진 글자를 지키려는 것과 같다.
강물은 찰나(刹那)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데, 우리는 그 위의 글자가 영원하기를 바란다. 오온개공(五蘊皆空), 즉 나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본래 비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