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캔버스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화엄경(華嚴經)》의 방대한 바다에 발을 담그며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진리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원이다.
경전은 우리에게 파격적인 선언을 던진다.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상을 그려낸다.
이 구절은 단순한 비유를 넘어, 우리가 실재라고 믿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풍경이 사실은 내면의 의식이 빚어낸 정교한 환상임을 폭로한다.
현대인은 외부의 조건이 완벽해지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평생을 달린다.
더 높은 직급, 더 넓은 집, 타인의 인정이라는 물감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화엄(華嚴)의 시선에서 본다면, 이는 도화지 자체를 바꾸려 애쓰는 화가와 같다.
정작 붓을 쥐고 있는 손이 떨리고 있고, 마음속 물통이 탁한 색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그 어떤 도화지 위에서도 아름다운 풍경은 그려질 수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객관적이고 고정된 실체인 외경(外境)이 아니다.
그것은 주관이라는 필터를 투과하여 재구성된 개별적인 우주다.
누군가에게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인 새벽 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생존의 전쟁터로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비추는 마음의 거울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엄경은 이 지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엄중한 가르침을 설한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이 말은, 우리가 겪는 고통의 근원지가 외부의 환경이 아닌 바로 나의 분별심(分別心)에 있음을 지적한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탐진치(貪瞋癡) 세 가지 독이 마음이라는 붓 끝에 묻어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 지옥의 참상을 그려내고 그 안에서 괴로워한다.
지옥은 사후에 가는 장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부정적인 생각으로 덧칠한 마음의 풍경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현대인들에게 특히 묵직한 울림을 준다.
책임과 의무, 성과라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성취해야만 '괜찮은 세상'에 진입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화엄의 가르침은 그 순서를 완전히 뒤바꾼다.
마음이 먼저 평온의 색깔을 회복할 때, 비로소 눈앞의 세상도 평온한 안식처로 변모한다.
이것은 결코 현실을 도피하거나 자기 합리화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내 삶의 진정한 창조주임을 자각하라는 강력한 주체성의 회복 선언이다.
내가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붓을 씻고 새로운 색을 칠할 권능인 자성(自性)을 가지고 있다.
마음이라는 화가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찰나(刹那)의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을 그려내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의식적인 붓질'이다.
과거의 트라우마나 미래의 불안이라는 낡은 습관, 즉 숙세의 업력(業力)에 휘둘려 습관적으로 어두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지는 않은가.
화엄경은 우리에게 깨어 있는 관찰자가 될 것을 주문한다.
내 마음이 지금 어떤 색의 감정을 꺼내 들었는지, 어떤 선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긋고 있는지 똑똑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림의 질은 달라진다.
자각(自覺)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환경에 휘둘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세상을 주도적으로 그려 나가는 예술가의 지위를 되찾게 된다.
지혜로운 화가는 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그리면서도 그 안에 깃든 역동적인 생명력을 포착해 내고, 어리석은 화가는 화창한 봄날의 들판을 그리면서도 곧 시들어버릴 꽃의 허무에 빠져 슬퍼한다.
세상은 당신의 마음이 던진 질문에 대한 거대한 메아리다.
당신이 미움을 던지면 세상은 투쟁의 장이 될 것이요, 당신이 자비(慈悲)와 긍정을 던지면 세상은 그대로 은혜의 공간이 될 것이다.
화엄경의 첫 장은 우리에게 이 거대한 책임과 자유를 동시에 부여한다.
"당신은 오늘 어떤 세상을 그릴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바로 수행(修行)이며, 삶 그 자체다.
내면의 붓을 정갈히 가다듬고, 편견의 얼룩을 닦아내자.
그 깨끗해진 마음 위로 비로소
중중무진(重重無盡)하게 펼쳐진 찬란한 우주의 신비인 법계(法界)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의 조건에 구걸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미 완벽한 도구를 손에 쥔, 이 세상이라는 위대한 작품의 유일한 작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