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도의 프러포즈

파계(破戒)할 뻔했던 욕정 (欲情)

by 현루

시의 배경이 된 에피소드.


​아는 선배 스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나는 당분간 선배 스님의 개인 사찰에 머물며 총무 소임을 맡게 되었다.

이 사찰은 여느 절과는 달랐다.

개인 사찰이었고 그럼에도 규모가 꽤 컸다.

주지 스님이 노래와 승무(僧舞)로 유명 인사였기에 외부 일정으로 인해 절을 자주 비웠고, 자연스레 나는 사찰의 크고 작은 업무를 도맡아야 했다.

마치 절의 숨결을 책임지는 허파가 된 듯했다.

​마침 안거 기간과 겹쳐, 나는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게는 정진의 기회를, 신도들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주지 스님께 100일 동안 신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했고, 흔쾌히 허락받았다. 나는 프로그램 설계에 몰두했다.

새벽 예불로 시작해 사시불공, 저녁 예불로 이어지는 일상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주중에는 신도들과 함께하는 108 염주 만들기, 사경(寫經), 108 대참회문 정진 그리고 불교의 초심을 다잡는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강의까지, 그 모든 것이 내가 직접 짠 수행 로드맵이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수행자로서의 작은 설렘과 책임감이 스며들었다. 100일 동안 신도들과 함께 땀 흘려 정진하며, 나는 확실히 수행자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자부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회향(廻向) 한 후에도, 나는 이 사찰에 남아 주지 스님을 대신해 절 살림과 신도들을 살피는 일을 이어갔다.

평온함 속에서, 나는 걸림 없는 수행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 와중에, 나보다 연상인 한 보살님에게서 점심 식사 제안을 받았다.

총무 소임을 맡은 이래 신도와의 식사는 흔한 일이었지만, 단둘이 가는 것은 처음이라 잠시 망설여졌다.

그러나 '어떤 의도도, 불순한 일도 없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에게 보살님은 그저 '열심히 정진하는 신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예약된 한정식집에 도착했다.

정갈한 상차림처럼, 대화도 처음엔 가볍고 잔잔했다.

사찰 업무와 신행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던 중, 보살님이 문득 요즘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회는 언제나 좋은 일이죠. 마음에 걸림이 있다면 털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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