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 혜능(六祖 慧能):"본래무일물"

소유라는 감옥을 깨부수는 글자의 단칼

by 현루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의 등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을 가득 지고 살아갑니다.

그 짐의 이름은 때로 사회적 지위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며, 혹은 내가 타인보다 우월하거나 혹은 열등하다는 뿌리 깊은 선입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짐들이 곧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그것을 더 높이 쌓거나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육조 혜능 대사는 우리에게 명징한 죽비를 내리칩니다.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즉,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디에 티끌이 앉으랴"라는 이 일갈은 우리가 짊어진 모든 거짓된 껍데기들을 단숨에 내려놓게 만듭니다.
​마음이라는 거울에 앉은 '분별'이라는 먼지
​당시 선종의 거구였던 신수(神秀) 대사는 마음을 거울에 비유하며 "부지런히 닦아 먼지가 앉지 않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덕적 수양이나 끊임없는 자기 계발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혜능 대사는 한 차원 더 높은 본질을 꿰뚫어 봅니다.

거울이라는 형체조차 본래 텅 빈 것이라면, 그 위에 앉을 먼지 또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수많은 불화와 갈등을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우리는 상대를 마주할 때 본연의 생명을 보기보다, 그 위에 덧칠해진 조건을 먼저 봅니다.

'학벌이 낮은 사람',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라는 명칭은 모두 우리가 마음의 거울 위에 스스로 뿌려놓은 '티끌'입니다.

본래 아무것도 없다는 도리를 깨달으면, 우리는 비로소 상대방의 겉모습이나 세속적인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그 깊은 곳에 깃든 존엄함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무는 가장 강력한 하모니의 시작입니다.

​조사들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더 채우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덜어내고 비워내어, 우리 모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깨끗한 성품을 회복하라고 권합니다.

내가 '나'라는 상(相)을 꽉 쥐고 있는 한, 타인과의 진정한 함께함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이나 배경이 나의 본질이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무시하거나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본래무일물의 지혜는 소유에 기반한 모든 위계질서를 무너뜨립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면,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으며, 정답과 오답의 구분 또한 사라집니다.

비워진 마음은 막힘이 없습니다.

내가 비워져야만 타인의 진심이 내 안으로 들어올 공간이 생기고, 나의 진정성이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있습니다.

조화로운 세상이란 서로가 서로를 억지로 교화하거나 채워주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가 마음의 욕심을 비워 그 빈 공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자유롭게 공명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혜능 대사의 가르침은 결코 세상을 등지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집착을 비웠을 때 온 우주와 내가 하나로 연결되는 '텅 빈 충만'의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품은 '성공'이라는 환상, '완벽'이라는 강박을 내려놓는 순간, 현재의 모습 그대로가 이미 완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삶의 조건이 어떠하든, 그 모든 차이는 본래 텅 빈 바탕 위에서 잠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구름과 같습니다.
​조사어록은 현대인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기 위해 타인과 성벽을 쌓고 있습니까?

당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그 알량한 자존심과 소유물이 혹시 당신과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래 아무것도 없다는 그 근원의 자리로 돌아가 보십시오.

그곳에서는 어떠한 차별도 미움도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맑게 갠 하늘처럼 텅 빈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가 갈망하던 진정한 하모니가 연주될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이며, 본래 평등하며, 본래 부족함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 자명한 진리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찾아야 할 단 하나의 안식처입니다.

본래 아무것도 없기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