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도일(馬祖 道一): "평상심시도"

당신이 딛고 선 그곳이 바로 진리다

by 현루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끊임없이 '어딘가'에 도달하려 애씁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 지금보다 더 고결한 인격, 혹은 지금보다 더 특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분투합니다.

우리는 늘 '여기'가 아닌 '저기'를 갈망하며, 일상의 사소하고 반복적인 일들을 지루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선종의 기틀을 다진 마조도일 대사는 우리의 이러한 환상을 단칼에 베어버립니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 즉, "평상시의 마음이 곧 도(道)이다"라는

이 파격적인 선언은 진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숨 쉬고 밥 먹고 걷는 매 순간 속에 살아 있음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왜 평범한 일상을 견디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업적을 남겨야 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하며,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져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특별함'에 대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비교와 소외를 낳습니다.

내가 특별해지기 위해 타인을 짓밟거나, 반대로 특별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세상과의 조화를 깨뜨립니다.
​마조 대사는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려 하거나(造作),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是非), 취하고 버리는(取捨) 마음이 없는 상태가 바로 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갈등은 대부분 '내 방식이 특별히 옳다'는 고집이나 '더 좋은 것'만을 취하려는 탐욕에서 비롯됩니다.

일상의 마음, 즉 평상심(平常心)을 회복한다는 것은 이러한 인위적인 조작을 멈추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의미합니다.
​밥 먹고 물 마시는 일 속에 깃든 우주의 질서
​조사들은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잔다(饑來喫飯 困來卽眠)"는 말로 도의 본질을 설명하곤 했습니다.

이것은 게으름을 예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밥을 먹을 때는 오직 밥 먹는 행위와 내가 하나가 되고, 일을 할 때는 오직 그 일 자체에 온 마음을 다하는 '순수한 몰입'을 뜻합니다.

우리가 세상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이유는 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일의 걱정을 하고, 사람을 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계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함께함과 화합은 거창한 구호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고, 함께 나누는 찻잔의 온기를 오롯이 느끼는 평범한 순간들이 쌓여 거대한 하모니를 이룹니다.

마조 대사가 강조한 평상심은 바로 이러한 '지금, 여기'에 대한 지진한 긍정입니다.

우리가 특별한 목적 없이 서로를 대할 때,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노동을 신성한 수행으로 여길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경계는 허물어지고 비로소 만물과 조화롭게 공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때로 기적을 바랍니다.

고통이 한순간에 사라지거나, 운명이 극적으로 바뀌는 대단한 사건을 꿈꿉니다.

그러나 조사어록이 전하는 진짜 기적은 번뇌 가득한 이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평상심을 유지하며 걷는 일 그 자체입니다.

화가 날 때 화를 내되 그 화에 매몰되지 않고,

기쁠 때 기뻐하되 그 기쁨에 휘둘리지 않는 평정심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뿌리입니다.
​마조도일 대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그토록 바쁘게 달려가고 있습니까?

당신이 그토록 찾 헤매는 '진리'와 '행복'은 혹시 당신이 무심코 지나친 오늘 아침의 식탁 위에,

혹은 당신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했던 동료의 얼굴 속에 숨어 있지 않습니까?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 보십시오. 특별한 것을 찾으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당신이 딛고 선 그 흙먼지 날리는 땅이 바로 찬란한 정토(淨土)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평상심을 회복한 사람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스승이며, 매 순간이 잔치입니다.

억지로 꾸미지 않은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갈 때, 당신은 비로소 세상이라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가장 아름다운 한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도(道)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 바로 그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