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머무는 그곳의 주인이 돼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환경의 포로'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사회의 고정관념에 맞추느라, 혹은 타인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정작 나 자신의 목소리는 잃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마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가는 조각배처럼, 우리는 삶의 주도권을 외부에 내어주고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이러한 현대인들을 향해 선종의 가장 강렬한 사자후를 내뿜었던 임제 의현 대사는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즉,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참되다"라는 이 가르침은 우리 삶의 무게중심을 밖에서 안으로 단숨에 옮겨놓습니다.
우리는 왜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두려움과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비교의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제 대사는 이러한 마음을 '밖에서 구하는 마음(向外馳求)'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남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은 결코 자기 삶의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나를 깎아내거나 덧칠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인생의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임제 대사가 강조한 '주인(主)'은 단순히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뜻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본래의 맑은 성품을 잃지 않고, 외부의 유혹이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영혼을 의미합니다.
내가 내 마음의 주권을 회복할 때, 비로소 세상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나의 진실함이 펼쳐지는 광활한 무대가 됩니다.
"수처(隨處)"라는 말은 '어떠한 처지나 장소에서도'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중에 성공하면', '좋은 환경이 갖춰지면' 그때 가서 제대로 살겠노라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임제 대사는 바로 지금 당신이 처한 그 자리가 가장 거룩한 수행처라고 말합니다.
설령 그곳이 비루한 일터일지라도, 갈등이 들끓는 가정일지라도, 당신이 그 상황의 주인공으로서 깨어 있다면 그곳은 곧 진리의 자리(立處皆眞)가 됩니다.
세상과의 진정한 화합은 비굴한 순응이 아닙니다. 당당한 주인 정신을 가진 개인들이 서로의 주체성을 존중하며 어우러질 때,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함께함이 가능해집니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서지 못하면서 타인과 조화를 이루겠다는 것은 기초가 부실한 건물에 화려한 장식을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수처작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배척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로운 연대'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임제 대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殺佛殺祖)"는 파격적인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이는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말고, 오직 자기 내면의 살아있는 '무위진인(無位眞人, 지위 없는 참사람)'을 믿으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온갖 이데올로기와 고정관념의 허상을 깨부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됩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운전대를 누가 잡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밖으로 향하던 레이더를 끄고 내면의 빛을 밝혀 보십시오.
당신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당당히 첫발을 내디딜 때, 당신을 둘러싼 온 세상은 비로소 당신과 함께 춤추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주인이 된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며, 그곳에서 연주되는 당신의 삶이 바로 최고의 하모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