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른손으로 시를 씁니다

06 리허설 없는 하루

by 현루


< 리허설 없는 하루 >

예고는 없었다
막은 그냥 올랐다

무대도 없고
조명도 없고
대사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와 같은 잠자리였고
늘 하던 습관처럼
눈을 떴을 뿐인데

오늘은
어제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왼쪽이 묻혔다
말은 목울대에서 흩어졌고
시간은 갑자기
뻐근하게 느려졌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런 장면이 올 거라고
이렇게 내 인생이
이질적으로 뒤틀릴 거라고

리허설은 없었다
준비된 것이라고는
습관적인 호흡
그리고 나

어제까지의 나는
이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배우
대사도 기억나지 않고
움직임도 어색했다

그렇다고 무대를 떠날 순 없었다
불 꺼진 객석을 등지고
나는 그냥
그 하루를 통과해야 했다

지금 여기의 나는
무대의 중심에 없다
조연도, 엑스트라도 아닌
그냥
무대와 같은 존재

하루가 나를 통과하고
나는 하루를 받아낸다
불완전한 대사로
흐트러진 동선으로
그러나 분명히, 지금 여기에서

이 장면은
누구도 짜지 않았고
어느 대본에도 없지만

나는 안다
이날의 나는
가장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