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는
시간을 가두는 투명한 감옥이자,
동시에 찰나를 흐르게 하는
정직한 통로입니다.
좁은 목을 통과하는 모래알들은
서로를 밀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무게만큼만
세상으로 내려앉습니다.
그것은 멈출 수 없는 상실이 아니라,
비워진 만큼 다시 채워질 수 있다는
가장 고요한 순환의 기록입니다.
우리는 아래로 쌓이는 모래를 보며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지만,
모래시계는 이미
다음번의 뒤집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누군가와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그의 모래시계를 억지로 멈춰 세우는 것이 아니라,
중력에 몸을 맡긴 모래알들처럼
서로의 속도에 맞춰
가만히 곁을 지키며
함께 떨어지는 일입니다.
모든 모래가 내려온 뒤의 정적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비워진 위 칸의 여백은
다시 채워질 인연을 기다리는
가장 겸허한 준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