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일 때는 멘탈이 강하다고 믿었다. 작은 일쯤은 버텨낼 수 있고, 웬만한 고통쯤은 웃으며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뇌출혈은 그런 자만심을 무너뜨렸고. 정신도 무너졌고, 자존감도 바닥을 쳤다. 그때 알았다. 멘탈은 원래부터 강한 게 아니라, 극한 상황 속에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거란 걸. 이 글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병원 생활은 생각보다 길고 복잡한 드라마였다.
그 안에는 상처보다 더 아픈 인간관계가 있었고,
통증보다 더 날카로운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는 이곳의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외로움이 있었다.
나는 타지 사람이었다.
같은 지역 출신의 환자들이 대부분을 이루는 병동에서,
‘서울 말’만 쓴다는 이유 하나로 은근한 벽이 생겼고,
내가 들어가는 대화는 미묘하게 공중에서 튕겨 나왔다.
“우리는 여기가 고향이라 정이 많거든.”
“서울 사람들은 좀 매정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웃으며 넘겼지만,
속으로는 점점 말이 줄어들었다.
병실에서 느끼는 이방인의 감정은
단순한 고립이 아니었다.
그건 내 존재가 ‘여기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부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사람들과 부딪혔다.
식사 시간에 자리를 두고 갈등이 생기고,
재활 일정 때문에 소소한 다툼이 벌어지고,
감정의 앙금은 하루 이틀 만에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결심했다.
이곳에서 버티는 것보단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자는 선택.
퇴원했다.
하지만 돌아갈 가족은 없었다.
나는 한때 승려였다.
속세를 떠나 절에서 17년을 살았고,
부모는 돌아가셨으며 형제와 친척과도 왕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병원 밖의 세상은 곧 ‘혼자 사는 집’이었다.
병원에서는 누군가라도 곁에 있었는데,
집은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정적은 벽처럼 무거웠고,
침묵은 나를 가만히 짓눌렀다.
집에 오자마자 깨달았다.
한 손으로는 세상이 너무 무겁다는 걸.
씻는 것도, 밥을 챙기는 것도,
휠체어를 타고 방에서 부엌까지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매 순간이 ‘생존’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몸이 점점 망가졌다.
결국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고,
그 후 몇 차례 입퇴원을 반복했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고단한 시간.
하지만 서서히,
아주 서서히 변화가 생겼다.
방문 요양사 한 분이
내 생활을 도와주기 시작한 것이다.
오후에 와서 청소와 식사, 외출과 심부름을 해 주었다.
그제야, ‘혼자 사는 삶’이
가능성의 언저리에 다가왔다.
나는 집에 머물기로 했다.
하루 세 시간 정도의 도움을 받으며
나머지 시간은 스스로 감당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나는 오랫동안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고통스러웠다.
도움 요청을 할 가족도 없고,
전화를 받을 친구도 없었고,
사회와 연결된 감각이 전혀 없었다.
고요한 방 안에서,
나는 자주 무너졌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물처럼 스며들었다.
매일 밤, 이 생각은
혼자 있는 방 안의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그 어떤 위로나 격려도 없던 시간.
나는 스스로를 쓰레기처럼 여겼고,
존재 자체가 실수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아직 살아 있을까.”
“누가 날 기억이나 할까.”
“이 삶이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
그 물음들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분노도 사라졌고,
희망은 물론이고,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침대에 누운 채
하루를 보내던 중,
무심코 옆에 있던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메모 앱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입원 중에 썼던 내 글 한 줄이 남아 있었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 후,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록이었다.
내가 하루에 했던 일,
느꼈던 통증,
사람의 말 한마디,
혼자서 먹은 밥 한 그릇.
그건 ‘문학’도, ‘작품’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글을 쓰면서,
내 멘탈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글쓰기를 통해
내 마음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았다.
나는 깨달았다.
멘탈이란 무너지지 않는 게 아니라,
무너졌을 때
그 조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였다.
이제는 매일 글을 쓴다.
휠체어에서, 오른손 하나로,
하루에 10000자 內外.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내 마음의 숨을 쉬게 하기 위한 글이다.
그리고 그 글 덕분에
나는 다시 살아가고 있다.
자살 충동은 여전히 문을 두드릴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문을 열지 않아도
나는 지금 충분히 잘 버티고 있다고.
멘탈은 강해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끈을 놓지 않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만 지켜도
시간은 우리 편이 되어
언젠가는
다시 마음을 일으켜 세워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군가의 돌봄 없이,
혼자 싸우고 있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괜찮아요.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당신은 망가지지 않았고, 아직 살아 있어요.”
“포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반드시 회복됩니다.”
그 믿음이
지금의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