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남은 삶이 며칠일지 모른다는 생각

뇌졸중과 간암을 겪으며

by 현루

사람은 대개 자신의 삶이 꽤 오래 이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내일이 오고, 다음 달이 오고, 내년 또한 아무 일 없다는 듯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고 있어야 하루하루를 별다른 의심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시간은 늘 넉넉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삶은 당연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몸은 때로 말보다 먼저 진실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몸의 신호들이 하나둘 의미를 가지기 시작하면서, 저는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조용히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분명한 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떠난다는 것, 생명이 시작된 이상 끝 또한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잊어버려야만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이 앞으로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이 질문에는 아무도 정확한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의사도, 가족도, 친구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저 오늘이라는 하루를 건네받았을 뿐,

그다음 날이 반드시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생각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질문이지만, 막상 그 질문이 자신의 삶 가까이 다가오면 마음이 쉽게 편안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상하게도 다른 감정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어떤 조용한 깨달음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아, 그래서 오늘이 이렇게 귀한 것이구나.’
그전까지는 하루라는 시간이 그렇게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늘 반복되는 것이었고, 비슷한 일들이 이어지는 평범한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고, 또 다음 날이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하루는 그저 지나가는 시간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남은 삶을 생각하게 되면서 하루의 얼굴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
따뜻한 밥 한 끼를 먹는 일.
창밖의 하늘을 잠깐 바라보는 일.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전보다 또렷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너무 평범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장면들이 조용히 마음에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늘 너무 멀리 있는 시간을 바라보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아쉬워하면서 정작 지금 손에 쥐고 있는 하루는 가볍게 흘려보내곤 합니다.

그런데 삶의 끝을 조금 의식하게 되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지금으로 돌아옵니다.
지금 숨 쉬고 있다는 사실.
지금 이 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한 사실들이 전보다 훨씬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모릅니다.

제 삶이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몇 년이 남았는지, 몇 달인지, 혹은 그것보다 짧은 시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끝까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닫는 일은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늘이라는 하루는 분명히 제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하루를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창한 깨달음을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살아 있는 동안의 평범한 하루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아침이 오고, 하루가 지나고, 저녁이 찾아오는 그 단순한 흐름 속에서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용히 기록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은 죽음을 기다리는 기록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을 바라보는 기록입니다.

남은 날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이라는 하루는 분명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먼 미래를 확실히 아는 일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하루를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보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늘도 그 하루를 조용히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남은 삶이 며칠일지 모르지만,
오늘이라는 하루는 분명히 제 앞에 놓여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