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양극단을 떠난 자리

'중도'라는 절대적 자유

by 현루

​1. 우리는 왜 늘 흔들리는가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한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선과 악, 그리고 내 편과 네 편. 우리는 이 거대한 이분법의 파도 위에서 한쪽으로 쏠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는 순간, 우리는 필연적으로 반대편에 대한 불안과 공격성을 갖게 된다.

내가 옳다고 믿는 순간 상대는 틀린 것이 되고, 내가 가졌다고 믿는 순간 잃어버릴까 두려워지는 법이다.


​1967년 겨울, 해인사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진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은 바로 이 지점, 우리가 처절하게 매달려 있는 '양극단'의 밧줄을 놓으라는 파격적인 선언으로 시작되었다.


스님은 불교의 수많은 경전과 논서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핵심 원리로 '중도(中道)'를 제시했다. 그것은 단순히 중간 어디쯤에 머무는 타협이 아니라,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대립 구조를 근본적으로 타파하는 '절대적 자유'의 선언이었다.


2. 성철 스님이 정의한 중도의 실체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의 서두에서 중도를 설명하며 '이변(二邊)을 여의고 가운데도 머물지 않는다(離二邊 不居中)'라는 구절을 강조한다. 여기서 '이변'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상대적인 개념을 뜻한다.

있음(有)과 없음(無), 태어남(生)과 죽음(滅), 영원함(常)과 덧없음(斷) 등이 그것이다.
​스님은 불교 사상의 역사를 횡단하며, 인도 초기 불교의 가르침부터 중국 선종의 정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깨달음의 성자들은 한결같이 이 중도를 증득했음을 논증한다.

흔히 사람들은 중도를 '적당한 중간' 혹은 '회색지대'로 오해하곤 한다.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섞어 미지근하게 만드는 것을 중도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철 스님의 중도는 다르다.

뜨겁다는 생각과 차갑다는 생각, 그 두 가지 고정관념(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

즉 불에 타지도 않고 물에 젖지도 않는 본질적인 마음의 자리를 가리킨다.


​스님은 용수 보살의 '중론'을 빌려와,

모든 현상은 인연에 의해 생겨나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空), 그렇기에 '있다'라고 할 수도 없고 '없다'라고 할 수도 없는 중도의 상태임을 명확히 한다.

이것이 바로 백일법문을 관통하는 사상적 뼈대다.


3. '있다'와 '없다'의 틀에서 걸어 나오기


​우리의 고통은 대부분 '있음(有)'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된다.

내 재산, 내 지위, 내 가족, 심지어 '내 생각'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이 우리를 옭아맨다. 반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없음(無)'의 허무주의에 빠진다.

"인생 별거 있어? 다 부질없지"라는 냉소는 중도가 아니라 또 다른 극단인 '단멸공(斷滅空)'에 불과하다.


성철 스님은 이 두 가지 태도를 모두 '병(病)'이라고 진단했다.

'있다'는 고집은 탐욕을 부르고, '없다'는 포기는 나태를 부른다.

백일법문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그토록 집착하는 그 '자아'라는 것이 과연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가?

찰나마다 변하는 세포와 생각의 흐름 속에서 무엇을 '나'라고 확신하는가?
​중도의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연기(緣起)의 장이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 온 우주의 햇살과 바람, 타인의 수고가 필요함을 깨닫는 순간, '나'라는 좁은 틀의 벽이 허물어진다.

이것이 성철 스님이 말한 '정견(正見)', 즉 바르게 보는 눈의 시작이다.


​4. 갈등의 시대, 왜 다시 중도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극단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정치적 성향, 세대 차이, 젠더 갈등 등 모든 영역에서 양극단으로 갈라져 서로를 향해 삿대질한다.

각자는 자신이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지만, 그 정의가 상대에 대한 증오를 전제로 한다면 그것은 성철 스님이 경계한 '양변의 집착'일뿐이다.
​중도의 삶은 비겁한 회피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치열한 자기 성찰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들 때, '정말 그러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용기다.

상대방의 주장 속에서도 일말의 진실을 발견하고, 나의 주장 속에서도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태도다.

양극단의 팽팽한 긴장을 견뎌내며 그 너머의 본질을 보는 것, 그것이 백일법문이 21세기 우리에게 주는 실천적 지혜다.


5.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가장 유명한 법어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역시 중도의 다른 표현이다.

처음에는 산이 산으로 보이지만, 공부가 깊어지면 산이 산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空), 마침내 깨달음의 눈으로 보면 산은 다시 산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대상에 대한 나의 편견과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중도의 극치를 보여준다.
​백일법문은 우리에게 거창한 수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당신이 꽉 쥐고 있는 그 '한쪽 끝'을 잠시 내려놓아 보라고 권한다.

미움과 사랑, 성공과 실패라는 두 밧줄을 놓아버린 그 찰나의 정적 속에서,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평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곳이 바로 부처님이 거닐었던 길이며, 성철 스님이 백일 동안 우리를 이끌고자 했던 중도의 땅이다.

이제 우리는 그 길의 첫 문을 열었을 뿐이다.

출처: 예스24 상중하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