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이라는 낯선 세계에서 한 끼 한 끼를 억지로 넘기며 지내던 어느 오후, 나는 갑자기 진한 간장게장이나 얼큰한 찌개가 너무도 간절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냥 '병원밥이 아닌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그건 단순한 미각의 욕망이 아니었다.
병원 생활 속 답답함과 무력함,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탈출구였다.
그래서 환우 한 분과 함께 간장게장이 맛있다는 식당을 검색해 찾아 나섰다.
휠체어로도 진입이 가능한, 근처에 있는 조용한 골목의 작은 가게였다.
그렇게 맛있게,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한 끼를 먹고 나니 마음도 조금 풀어졌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였다.
식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가려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장애인 콜택시가 1대밖에 없었고, 시간 안에 올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함께한 환우는 나보다 더 불편한 몸이라 양보해야 했다.
나는 곧바로 일반 택시를 호출했다.
병원과 식당은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휠체어를 접고 조심스럽게 타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상상보다 훨씬 차가웠다.
택시가 도착하자, 기사는 나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바로 쌍욕이 쏟아졌다. "바쁜데, 병 X이 일반 택시를 부르고 지 X이야."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말문이 막혔다.
너무 당황스럽고, 황당하고, 어이없었다.
그 기사에게 무슨 설명을 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조용히 물러섰다. 그는 문을 쾅 닫고 떠났고,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남았다.
그 자리에 한참을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자존감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단지 조금 덜 불편하다는 이유로, 동행한 환우에게 양보한 것뿐인데.
단지 조금의 외출, 아주 소박한 식사의 여운을 느끼고 싶었던 것뿐인데.
장애를 안고 사는 삶은, 단순히 몸의 불편을 넘어선다.
내 멘탈이 그렇게 쉽게 부서질 줄은 몰랐다.
그 순간, 병원에서 재활을 시작하며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작은 자신감들이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마음조차 없었지만
결국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친절한 직원분이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다.
병원 휴게실에서, 나는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일이 앞으로도 많을 텐데,
감당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내 마음은 흔들렸고, 자존감은 깊게 파였다.
내가 이 세상에서 설 자리는 어디일까,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곁에 없었다. 결국 나를 붙잡아야 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날 밤,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자꾸만 도망치려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억울했다. 서러웠다. 무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속상했다.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그런 식으로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다시는 내 멘탈을 타인의 무지와 폭력에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그래서 결심했다. 일반 택시는 타지 않기로.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화가 날 수도 있겠다고, 이해해보려고도 했지만, 그날의 모욕은 분명히 선을 넘은 것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는 오래 남았다. 그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멘탈은 몸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는다. 몸은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기도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한 번 무너진 자존감은, 다시 세우는 데 몇 배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살아냈고, 다시 웃었고, 다시 길을 나섰다.
멘탈은 쓰러지는 게 아니라, 계속 다듬어가야 하는 거라고. 어쩌면 우리는 매일 멘탈을 다듬으며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말없이 버티고 이겨낸 날들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면, 몸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그리고 마음만 붙들면, 몸이 따라올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그날은 정말 힘들었지. 그래도 잘 버텼어. 오늘도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그게 바로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자 회복이다. 세상이 아직 나를 다 품지 못할지라도, 나는 나만은 버리지 않기로 했다. 그 마음 하나로, 나는 다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