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갈등, 갈등... 결국은 발행

by 현루

발행을 목전에 두고 갈등을 했습니다
과연 나의 이야기를 굳이 써야 하는가?

그러나 용기를 내어 창작의 글감을 활용하기로 결정합니다.


저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수많은 기억들이 마음속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그것을 꺼내어 활자로 정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절의 나,

부끄럽고 미숙했던 그 시절의 내가 다시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어오는 듯한 순간마다 마음은 아프게 저려오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나,

어떤 장면이나 기억이 문득 떠오를 때 그것을 글로 옮기기 위해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메모하며 구상하는 일이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그 익숙한 흐름을 따라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건 누군가의 상상이나 픽션이 아닌, ‘나’라는 인간의 실존의 궤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더 무겁고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 제 삶은 찬란했습니다.

동시에, 참으로 공허했습니다.
당시의 시간은 1980년대 중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배경은 서울 강남입니다.
오늘날의 강남이 아닌, 곳곳의 개발과 욕망이 들끓던 격동의 공간.
그곳에서 저는 ‘잘 노는’ 청년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오래된 단어가 되었지만, 그 시절 저 같은 청년들을 사람들은 ‘날라리’라 불렀습니다.

브랜드 옷을 입고, 번쩍이는 액세서리를 걸치고, 머리는 무스와 젤로 빳빳하게 세웠습니다.
음악이 흐르는 클럽에서 밤새 춤을 추고, 친구들과 새벽까지 거리를 활보하며 도시의 밤을 즐겼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동차를 굴리며,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술과 담배와 유흥이 뒤섞인 세상에 몸을 담그고 있었지요.

그런 삶을 저는 ‘자유’라고 믿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기 좋은 것에 빠지고,

듣기 좋은 것만을 골라 들으며,

인생을 소비하는 삶.
거기에는 책임도, 반성도, 성찰도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화려하고 당당했지만, 그 속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웃고 떠드는 제 얼굴 뒤에, 텅 빈 무언가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예고 없이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서의 짧은 연락, 장례식장에서의 혼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난 후에도 저는 멍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삶이란 게 이렇게 허망하구나.
그제야 ‘죽음’이라는 단어가 제 삶에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삶은 유한하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께서도 소천하셨습니다.
조부님의 49재는 강남 봉은사에서 열렸고, 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스님들의 염불과 목탁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단지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던 나 자신이 그 소리 사이에서 눈을 뜨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과 끊긴 듯한 그 고요 속에서, 제 마음 한편이 조용히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게 네가 원했던 인생이야?”

당시, 사랑했던 여자친구와도

출가 생각으로 인해 이별했습니다.
몸은 여전히 강남 거리를 걸었지만, 마음은 점점 낯선 곳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삶 전체가 절벽 끝에 서 있는 것 같은 위태로운 느낌.
무언가를 버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저는 도시의 삶을 내려놓고 절로 향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말렸습니다. “네가 거길 왜 가냐”,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냐”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잠시 머무는 여행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로의 도약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저는 전라도 산골의 낯선 사찰로 들어갔습니다.
새벽 2시 반 기상, 하루 2번의 예불, 삼천 배, 나물 반찬, 묵언 수행, 청소와 포행, 밤 9시 취침.
텔레비전도, 음악도, 일반 책도, 외출도 허락되지 않는 공간.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웠습니다. 어깨 위에 놓인 머리 하나가 그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또 가장 치열한 장소였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오롯이 ‘나’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도망칠 곳도, 숨을 구멍도 없는 그 절집 안에서 저는 한 꺼풀씩 내면의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수기는 그렇게 시작된 17년 수행 생활 중, 특히 본격적으로 승려가 되기 전까지 5년간의 기록입니다.
불같이 부딪히던 동료 수행자들과의 갈등,

작고 큰 실수 속에서 터득한 깨달음, 하산과 재입산을 오가며 겪은 고민과 방황…
그 시간들은 저를 새로운 인간으로 빚어냈고,

그 안에 삶의 뿌리를 다시 심게 했습니다.

이 수기는 특정 종교를 전파하고자 하는 글이 아닙니다.
단지, 방황하던 한 청년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다시 세워가는 이야기입니다.
절이라는 배경 속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이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건 삶에 대한 성찰이고, 존재에 대한 탐구입니다.

등장하는 스님들과 수행자들은 모두 제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묘사는 최대한 진솔하게 그렸으나, 자칫 오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저에게는 이 글이 ‘삶의 기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기억’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미 세상에 공개된 절집의 현실도 있으므로, 너무 숨기지 않고 제가 겪은 그대로의 경험을 담고자 했습니다.

이 프롤로그는, 그렇게 세속의 끝자락에서 선

한 청년이 절집 문턱을 넘게 된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앞으로 몇 화에 걸쳐 그 여정을 풀어낼지, 저도 아직 모릅니다.
처음으로 연재 형식으로 수기를 쓰다 보니, 글의 진도가 평소보다 더디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심을 담아,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써 내려가려 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한 사람의 변화와 여정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면, 그보다 더 바랄 건 없을 것입니다.

진심 어린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이야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정식 승려가 되기 전까지 저는 절에서 김행자라고

불렸습니다(행자는 출가하여 사미계 수계시까지 그렇게 호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