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만지고 사랑하라!

사랑받아야 할 몸뚱아리에 대한 생각꽁다리

by 마혼

<마혼의 Stage & Age 9>


평생을 남의 몸뚱아리만 아끼고 만지며 닦아내는 사내, 내가 고루 만져줬던가... 별 그래본 적이 없으니 이제 죽어서 남이 만져주는 건가?


2004년 청주에서 초연돼 입소문 타더니 서울까지 입성한 작품 ‘염쟁이 유씨’. 달랑 혼자 사는 염쟁이 유씨가 달랑 혼자 나오는 모노드라마다. 유씨는 대대손손 염쟁이 집안. 그도 젊을 때는 이 일을 안하려고 발버둥을 쳤었다. 그러나 지금은 넉살을 떨 만큼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


“죽은 자가 뭐가 무서워? 산 사람이 더 무섭지.”


그리고 병풍 뒤에서 몸뚱아리를 꺼내 바로 염에 들어간다. 자기 인생으로 들어간다. 죽은 자를 보내는 일은 수시 습 반함을 거쳐 소렴, 대렴까지이다. 우리들이 종종 가는 조문은 요 사이쯤 되는 셈인데 이 연극 역시 마찬가지. 요 사이를 다 보여준다. 적어도 죽은 자의 관점에서 벌어지는 프로세스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죽은 자를 만지는 일은 처음부터가 정성이다. 아낌없이 만져주고 닦아준다. 뿐인가. 죽어서도 잘 먹어야 한다며 입에 쌀까지 채워준다. 그가 염쟁이가 되는 덴 아버지가 한 몫 단단히 했다.


아비 : 애비가 자기 몸뚱아리를 다른 놈한테 닦으라고 해야겠냐?

유씨 : 예... 아버지 염은 제가 할게요.


가업을 물려받는 게 싫어 거짓말로 대답 먼저 해놓고 3년쯤만 따라다니다 그만둘 생각이었던 유씨. 그런데 하필 그 3년째에 아버지가 입원하는 일이 생겨버린다. 제대로 코가 낀 셈. 그저 소화가 안된다고 하길래 병원에 갔는데 이미 위암. 그 날로 사형선고가 떨어진다. 그 땐 그랬다.


“나는 내 깜냥껏 열심히 살았다. 후회 없어. 잘 죽으려고 하는 거 아니겠냐, 잘 살면 잘 죽는거여.”


그래서 염쟁이 유씨는 아버지를 처음 염하는 것으로 이 일에 뛰어든다. 그리고 영혼 수백 그램을 하늘로 보낸 만큼 세월이 흘러 결혼도 하고 아들이 태어났다.


“난 아들만큼은 이 일 안시키겠다고 했는데 아, 이놈이 어려서부터 줄창 시체놀이만 하는겨.”


그러던 아들은 어느덧 청년이 되더니 넓은 데로 나가고 싶었나보다.


아들 : 아버지, 딱 3년만 객지에서 경험도 쌓고 돈도 벌고 해보겠습니다.

유씨 : 알았다, 그럼 딱 3년만 객지생활하고 와. 그럼 허락하마. 잘 다녀오거라 이놈아.


그러나 3년 만에 돌아오겠다더니 안오던 아들은 다행히 9년만에 돌아오지만 결국 자살해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염. 마지막 죽은지 사흘째 새벽에 한다는 대염포로 대염하는 과정은 망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듯해 좀 더 서럽다. 그리고 입관만 남은, 그가 올린 몸뚱아리는 아버지로 시작해서 아들의 몸이 된다.


“아버지 염하는 걸로 이 일을 시작해서 자식을 염하는 걸로 마감을 보는구만. 아들아, 편안하게 잘가야 돼~”


아들 앞에 향불을 당기는 염쟁이. 그리고 나가는 그의 뒤로 향자욱이 깔린다. 과연 그는 누군가를 또 아끼고 만지고 사랑할 수 있을까? 어쨌든 안녕, 모든 죽은 자여!


그리고.


평생을 그 몸뚱아리를 아끼고 만지며 닦아주던 사내, 내가 다 만져줬던가... 별 그래본 적이 없으니 이제 헤어지고 남이 만져주는 건가?


은둔자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34세이던 1984년, 어느 극단의 제의를 받고 쓴 희곡 ‘콘트라바쓰’. 한 때 독일을 들썩거렸던 작품인데 달랑 혼자 사는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달랑 혼자 나오는 모노드라마. 브람스 교향곡 2번을 틀어놓은 연주자는 처음부터 콘트라바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콘트라바쓰와 자신을 물아일체의 경지로 몰아간다.


“오케스트라 단원들한테 물어보세요. 언제가 제일 진땀나는지... 물어보시라니까요!”


냅다 한 술 더 뜬다.


“악기로부터 멀면 멀수록 잘 들리는 악기예요, 콘트라바쓰는. 특이하죠.”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점 때문에 집에 방음판을 여기저기 붙여대느라 돈이 많이 들었다는 그는 이어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그 몸뚱아리를 잡아 연주하며 소리를 꽥꽥 질러대더니 급기야 그 멋진 몸뚱아리를 내친다.


“콘트라바쓰는 너무 볼품이 없어요. 살이 피둥피둥 찐 아줌마모습이죠. 엉덩이는 축 쳐졌죠, 허리부분은 잘록하지도 않으면서 위쪽으로 지나치게 길잖습니까? 게다가 가늘고 축 늘어져 곱사등이 같은 어깨 좀 보세요. 이렇게 못 생긴 게 연주하기도 힘들다니까요.”


‘그녀’에 걸려 넘어지기까지 한 그는 대놓고 화를 낸다. 그래서인지 승용차에도 안들어가는데다 거실에서는 날 감시하는 것만 같은 뚱뚱한 ‘그녀’가 못내 싫어진다. 끝내 전축의 음악마저 꺼버린 그는 자기와 어울리는 소리를 찾았다며 새로운 몸과 새로운 소리에 대한 이야기로 급선회. 바로 최근 알게 된 소프라노 가수 세라와 그 목소리. 그래서 이쪽은 ‘원초적인 저음’이 되고 저쪽은 ‘영원에 가까운 거룩한 높이’가 된다. 그리고 세라를 연주하듯 콘트라바쓰를 손으로 문지르고, 또 연주한다. 맨정신으론 자기 아내를 안을 수 없는 남자처럼 칭얼댄다. 어쩌면 부모에 대한 화풀이로 일부러 여자 몸뚱아리 같은 이 ‘그녀’를 선택해 그간 연주하며 겁탈했다고 고백하는 그는 이제 새로운 짝이 필요한 걸까. 마침 새로온 소프라노 가수 세라는 젊고 우아한데다 키도 작고 아담한 몸이라 그가 늘 연주하던 ‘그녀’와는 딴판. 정작 그도 딴판. 그렇게 못생긴 ‘그녀’라 할지라도 세라를 위한다면 가장 중요한 악기가 될 수 있다고 금방 또 뒤집는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그녀. 가장 뒤에서, 가장 들리지 않는 소리.

여자들에게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는 그는, 가장 뒤에서, 가장 들리지 않는 수작.


“사실 그 여자는 저한테 그림의 떡입니다. 개인적으로 만날 경우가 극히 적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계기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베이스를 집어 던진다든지, 제 앞의 첼로를 활로 문지른다든지, 확실한 실수를 해서 이목을 집중시키는 거지요.”


그래서 수상까지 와서 보는 다음 공연에서 일을 벌일 작정. 그렇게 그는 사랑하고 싶은 새로운 몸뚱아리를 찾아 나갈 준비를 한다.


“이제 그만 가볼게요. 홀에 가서 소리를 지르려구요. 용기가 있다면 말이죠. 내일 신문기사에 나오겠죠... 그럼 안녕!”


그리고 뛰쳐나가는 그의 뒤로 슈베르트의 ‘숭어’가 알레그로 비바체로 깔린다. 과연 그는 세라를 아끼고 만지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가 ‘세라’를 외치는 순간, 그 소리는 가장 앞으로 나오는, 가장 잘 들리는 소리가 될 수 있을까. 어쨌든 안녕, 그녀 콘트라바쓰!


자, 그럼 당신은? 아끼고 만져주며 사랑하고 있는지...? 크흣, 뭐가 됐든 조금만 더 멋지게 연주해주면 될텐데 말이다. 어떤 몸뚱아리든 그 자체로 악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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