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깨주면 죽을까봐 스스로 껍질 깨고픈 사람들 이야기
< 마혼의 Stage & Age 4>
루퍼트 브룩 Rupert Brooke. 태어나서 희곡이라고는 달랑 한편 쓰고 28살에 요절하신 영국 시인이다. 그가 쓴 유일한 희곡 ‘리투아니아’. 나라 이름이 연극 제목이라 흥미롭다. 다만 브룩은, 시는 서정적인 시를 주로 썼는데 요것만 그로테스크하다. 그래서 한 때 잔혹극으로 분류되기도 했던 작품.
가난하고 척박한 리투아니아의 산속 외딴 오두막집. 아빠 엄마 딸 홀랑 세 식구가 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빈곤을 겪을 대로 겪은 우울증집안. 어느 날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손님이 집에 찾아온다. 적당히 술에 취했고 흥겹다. 그런데 뭐 이런 바보천치같은 손님이 다 있단 말인가. 낯선 곳에서 야밤에 자기 돈을 자랑질한다. 자기는 부자라며. 가정집이고 여자 둘에 남자 하나니 방심했던 걸까. 엄마나 딸 중 누구든 마음에 들었던 걸까.
한편, 가족들은 이 수상한 놈이 도둑놈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데서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그를 죽이고 그 ‘도둑’의 돈을 뺏을 수 있음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선두주자는 엄마와 딸. 왜? 그들은 이미 우울할 대로 우울하고 지칠 대로 지쳤다. 이 가난에서, 이 좁은 곳에서 스스로를 꺼내지 않으면 영영 꺼내지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여자들. 그래서 유일한 남자인 아빠를 꼬드긴다. 죽이란다. 잽싸게. 그리고 은밀하게.
그러나 생각보다 쫄보인 아빠. 그냥은 못하겠고, 일단 술 한 잔 걸치기로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차피 술 없이도 할 수 있는 법. 어지간한 술로도 안되자 아빠는 술을 더 마시고 오겠다며 도망간다. 그러자 가장 연식이 덜 된 딸이 과감해진다. 남자가 하루만 자고 갈지도 모른다. 시간이 없다. 그래서 얼른 남자를 꼬셔보기로 한다. 자기 상처난 무릎을 만져보라며 남자 손을 이끈다. 하지만 거절.
그러다 손님이 잠이 들었다. 어긔야 어강됴리 이제 요길 벗어나는구나. 신나서 죽인다. 그런데 잠시후 술집사장과 아들이 술에 취한 아빠를 끌고 들어온다. 문제는 죽은 남자는 이 집에 오기 전 술집에 들러서 자기가 누군지, 왜 그 집에 가려하는지를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렸을 때 가난이 싫어서 가출했던 이 집의 아들. 결국 그 집에선 시체만이 꺼내질 뿐, 산 자는 아무도 꺼내지지 못한 채 막이 내린다.
그리고.
노르웨이에는 걸출한 삼총사가 있다. 작곡가 그리그, 화가 뭉크, 그리고 헨릭 입센. 요 셋의 공집합이 있으니 그걸 모른다면 어디 가서 딜레땅뜨인척 하면 곤란하겠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헨릭 입센. 20살부터 희곡을 써대기 시작하더니 페르귄트, 인형의 집으로 대박났다. 그 중에서도 지금은 인형의 집.
지금에야 이런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가는 그나마 진보된 평등이 이 땅에 있으나 애니웨이, 이 작품은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수천년의 인류역사 중 겨우 140년 전쯤에, 고작 이런 내용이 풍파를 일으켰다는 사실이 신묘할 뿐.
추운 겨울의 어느 저택. 좋게 말하면 ‘안주인(왜 안일까?)’이요, 나쁘게 말하면 머리 텅 빈 종달새 같은 여자 노라. 그리고 좋게 말하면 ‘바깥양반(왜 밖일까?)’이요, 나쁘게 말하면 여성 사육사인 남편 헬메르가 산다. 헬메르는 노라를 온갖 동물이름으로 놀리지만 정작 노라는 남편의 ‘돈’만 있으면 행복한 여자.
노 라 : 음... 나에게 선물하려면...
헬메르 : 말해봐.
노 라 : 돈을 주면 돼요.
그러나 더 짜증나는 건 정작 자기를 위해선 돈 쓸 줄도 모르는 노라. 그래서 둘은, 한쪽은 노래만 하고, 한쪽은 그 댓가로 모이를 주는, ‘털없는 원숭이’ 에나 나올 법한 부부관계. 그래도 그녀는 마냥 즐겁다. 당장은 먹고살만할 뿐더러 새해가 되면 남편이 은행 총재로 부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마침 노라의 여사친이 오랜만에 그녀의 집을 찾았는데 하필 그녀는 지금 노라와는 반대의 처지. 그래서인지 여사친에게 수다와 회포, 나아가 자랑질까지 다 풀어댄 그녀는 기꺼이 여사친의 일자리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남편 역시 흔쾌히 이를 들어준다.
그러나 이제 속살이 드러날 시간. 이미 은행에서 해고가 결정된 변호사는 자기가 그 여사친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오해하고 노라를 찾아온다. 그러나 여사친을 자기가 부탁해 은행에 꽂았다고 자랑질하던 노라는 정작 자리를 지켜달라는 변호사에겐 그럴 힘이 없다고 돌아선다. 실제로도 그렇고.
그러나 변호사는 제대로 된 무기를 챙겨왔다. 예전에 헬메르가 아플 때, 그를 치료하기 위해 돈을 빌렸던 경험이 있는 노라. 당시 법으론 여자는 돈을 빌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가 죽고 며칠 후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렸었다. 이 돈을 빌려준게 바로 이 변호사. 이제 거꾸로 협박에 들어간 변호사. 그러나 노라는 아직은 절벽 앞이 아니다. 그녀가 빌린 돈으로 남편 헬메르가 병을 치료하지 않았는가. 적어도 지금의 남편에 가장 큰 지분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부탁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헬메르는 노라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생학적 가치관으로 그녀를 때릴 뿐이다.
헬메르 :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 엄마가 거짓말쟁이라구!
그도 그럴 것이 헬메르와 변호사는 대학동기인데 그가 은행총재가 되는데도 여전히 반말을 하는 변호사가 기분 나빠서 잘라버린 것이라 노라의 부탁을 들어줄리 만무. 결국 변호사는 노라만 있을 때 그 집 우편함에 사실을 몽땅 적은 편지를 넣어놓고 가버린다. 그 우편함의 열쇠는 헬메르만 가지고 있고.
노라의 불법행위가 들통날 시간이 얼마 안남은 그 때, 여사친은 자기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노라부부가 파티에 참석한 동안 노라의 빈집에서 변호사와 조우한다. 사실은 이 둘도 이미 아는 사이. 예전에 여사친은 변호사를 뻥 찼었다. 마침 지금은, 여사친은 돌봐줄 아이들이 필요하고 변호사는 애들을 돌봐줄 엄마가 필요한 형편. 그래서 둘은 재회를 약속하는 얄딱구리가 되기로 하면서 여사친은 다시 ‘가정’으로 스스로를 가둔다. 문제는 받을 돈도 포기하고 편지를 거두려는 변호사를 이번엔 여사친이 말린다. 결국 모든 걸 알게 된 헬메르는 노라를 경멸하며 아이들을 교육시킬 자격이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르고 이를 계기로 노라는 머릿속 껍질이 깨진다. 그리고 ‘가정’에서 스스로를 꺼낸다. 사람의 집이 아닌 그 인형의 집에서.
자, 그럼 당신은? 흐흣, 누가 꺼내주길 기다리는가? 아니면 기어이 스스로 꺼냈는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누구라도 좀 꺼내줄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