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뭐래도 아프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궁리
<마혼의 Stage & Age 6>
때는 1910년 초. 당시 유일한 한국어 신문인 매일신보. (속상하지만) 일본 것을 업그레이드해 비벼낸 소설, ‘김중배의 다이아반지가 그렇게도 탐이 났단 말이냐’로 유명한 ‘장한몽’이 연재됐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몇 달 뒤 바로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뿐인가. 최초의 근대희곡 ‘병자삼인’까지 소개돼 가열차게 국산 신파극의 막을 열어제꼈다. 북 치고 장구 쳐서 이 모두를 가능케 했던 인물 조중환. 그는 당시 매일신보의 기자이며 작가요 또 배우였다.
'병자삼인'은 우월한 유전자에 스펙좋은 아내 셋과 지지리 궁상 루저 남편 셋이 나오는데 이 중 셋은 제목 그대로 아픈 사람이 된다. 교사시험에 떨어진 ‘정필수’는 하필 아내이자 교사인 ‘이옥자’가 다니는 학교에 급사로 재직 중이다. 말이 급사지 청소하랴 심부름하랴 영락없는 하인이라 아내에게서 늘 업신여김을 받는데 집에서도 밥하는 처지다. 부부지간의 대화부터가 여존남비.
이옥자 : (성이 잔뜩 나서) 나더러 여보게라니. 어디 감히 아래윗입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 선생과 하인의 구별을 좀 생각해야지.
정필수 : 예, 그저 잘못했습니다.
하필 이 날은 정필수가 피곤해서 학교를 빼먹은 날. 화가 난 이옥자는 못 배워서 그렇다며 남편에게 학생 대하듯 일본어를 가르친다. 집에서 쫒겨나기 싫은 정필수는 가뜩이나 병맛인데 이옥자는 말귀도 못알아먹냐며 귀를 잡아당긴다. 그러자 정필수는 갑자기 귀머거리가 되는데 마침 학교 남자의사 ‘하계순’이 집에 들른다. 정필수의 윙크질에 남자끼리 죽이 맞아 돌아가더니 남편은 잘 먹고 잘 쉬어야 하고 하인이라고 불러서도 안되다는 진단을 내고 가버리는 의사 하계순. 이옥자는 약이 오른다.
그런데 이 하계순의 아내인 ‘공소사’ 역시 학교의사인데 마침, 딱, 이 집에 온다. 이옥자는 같은 여자끼리 입 좀 털고 싶었는지라 한방에 자초지종 설명하자 공소사는 대번에 꾀병임을 알고 굶기라고 이른뒤 집에 와 남편을 쥐잡듯 잡는다.
공소사 : 그래도 명색이 의원이라고 행색하면서 믿은 데가 있으니까 귀머거리로 진찰한 것이 아니오. 첫째 그 말을 내가 좀 듣고 싶단 말이오. 지금까지 남의 병에 약을 삐뚜루 써서 남의 목숨을 없앤 것이 얼마요. 이런 돌팔이 의원을 우리 병원에 두었다가는...
하계순 : (눈만 꿈쩍꿈쩍)
정필수와 별다를 바 없는 입장이라 별다를 말 없는 남편 하계순 역시 요 때부터 벙어리가 되버린다. 들었던 처방과 달리 오히려 밥도 못얻어먹는 처지가 된 정필수는 동병상련 하계순을 찾아오지만 둘은 뾰족한 수가 없다.
한편 이 학교 교장은 여교장인데 이름하여 ‘김원경’. 그런데 마침 그 남편은 또 이 학교의 회계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박원청’이란 인물이다. 박원청은 학교로 찿아온 술집 기생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외상값을 공금으로 갚았는데 하필이면 고 때 딱 교장 아내가 들어오는 바람에 들켜버린다. 답없는 박원청 역시 갑자기 눈에 병이 나더니 청맹과니가 되버린다.
하지만 여자들은 남자들 머리꼭대기에 있는 법. 눈을 도려내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며 가위를 들자 눈이 보이며 도망가는 박원청. 그러더니 남자 셋이 길에서 모여 작당한다. 어차피 병신짓 하면 죄가 성립안된다며 더 뻔뻔해지기로 한다. 때마침 딱, 길을 지나던 헌병이 자초지종을 듣더니 셋 다 감옥에 처넣겠다고 하자 급 약해지는 부인들. 그래도 남편인데 감옥은 안된다며 빌자 급피엔딩¹ 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17세기 프랑스. 역시 혼자서 징 치고 꽹과리 치던 남자가 있었으니 자기가 대본 쓰고 그걸 연극으로 만들어서 직접 주인공까지 연기한다. 그런데 무리했던 걸까, 무대 위에서 쓰러진다. 작품제목은 ‘상상병환자 Le Malade imaginaire’ 였는데 그는 결코 상상병으로 쓰러진게 아니었으니, 그 날 진짜로 생을 달리한다. 무대 위 배우들은 농반 진반 무대 위에서 죽고 싶다고 상상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버린 이, 몰리에르다. 그래서 티키타카가 잘 맞아돌아가는 이 훌륭한 블랙코미디는 그의 유작이 된다.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걱정투성이에 구두쇠이기까지 한 아르강. 실제로 아픈 덴 한 군데도 없는데 자긴 늘 아프다고 느낀다. 그래서 정말 아픈 사람처럼 주치의 ‘퓌르공’이 내린 처방을 철석같이 믿고 매일 수 백알의 약을 먹고 매일 관장을 해댄다.
그렇게 똥꼬가 거의 없어질 무렵, 아르강은 큰 딸을 시집보내기로 하는데 그 상대는 주치의 퓌르공의 조카인 강남 성형외과급 닥터. 병도 낫고 돈도 아끼며 도랑 치고 가재도 잡고 싶은 그는 딸을 정략결혼에 마음껏 이용하려는, 그야말로 환자중의 환자로 거듭난다. 정작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큰 딸 역시 덩달아 환자에 입문할 지경.
한편 아르강의 두 번째 부인 역시 돈에 환장한 환자였으니 아르강을 구슬려 딸에게 갈 그의 유산을 자기 앞으로 돌린다. 이를 알게 된 ‘안 아픈’ 아르강의 동생은 내친김에 쭉정이들을 골라내기로 마음먹고 영리한 하녀 뚜와넷을 끌어들인다. 우선, 형에게서 돈만 뜯어내는 퓌르공이 못마땅한 동생은 대놓고 관장을 방해한다. 기분이 상한 퓌르공은 저주를 퍼붓고 떠나버린다.
퓌르공 : 4일 뒤부터 몸이 썩어문드러질 것이오.
아르강 : 아 이런 망할...
퓌르공 : 허혈성괴사에서 항문파열로 번지고!
아르강 : 퓌르공선생!
퓌르공 : 항문이 찢어지면서 내장이 터지고!
아르강 : 퓌르공선생님!
퓌르공 : 모든 장기가 박살나고!
아르강 : 선생님!!
구멍들이 몽땅 찢어질 위기에 처하자 아르강은 딸을 수녀원에 보내기로 결심을 굳히면서 이 저주를 동생한테 그대로 반사한다. 만만치 않은 동생. 후처에게 유산 주기 전에 그리고 딸을 수녀원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사랑을 확인해보라며 죽은 척 해보란다. 갖고 있던 온갖 잡병에 죽은 척 꾀병 하나만 얹는데다 돈도 안들어가는 일. 아르강이 솔깃하자 피를 속일 수 없는 형제는 버라이어티 쇼를 기획, 제작한다.
그 결과 아르강의 두 번째 부인은 오로지 그의 돈을 노린 것이 밝혀지고, 큰딸은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동생은 이 참에 아르강에게 직접 의사가 되라며 제대로 꼬집기 한 판 들어간다.
아르강 : 약올리냐? 이 나이에 어떻게 공부를 해?
베랄드 : 의사가운만 있으면 돼. 수염은 있으니까.
아르강 : 그렇게 금방?
베랄드 : 집에서 그냥 수여식만 하면 되는데 뭐!
자, 그럼 당신은? 아픈가? 크흣, 많이 아픈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좀 아파볼텐가?
¹ 서둘러 끝내는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