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고파, 그대에게서!”

죽으나 사나 되돌아오게 되는 호모 트라게디우스¹ 들의 전기

by 마혼

<마혼의 Stage & Age 7>


하늘이 정하는가, 내가 정하는가. 그저 내 발 닿는 곳으로 가면 되는 것일까. ‘퉁퉁 부은 내 발...’.


옛날 옛적, 예쁜 아기가 태어난다. 그러나 그 부모는 야리꾸리한 하늘의 계시를 받는다. 그 아기는 저주받은 운명,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몸을 섞을 운명이라는 내용. 이 때만 해도 신의 계시를 무겁게 여기던 때라 부모는 아기를 키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진다. 발에 못이 박힌 채. 여기서 공교로움의 서막이 열린다. 버리는 놈이 제대로 안 버렸다. 그래서 그저 발이 퉁퉁 부은 채 하염없이 강을 떠내려가던 아기를 어느 목동이 줍는다.


다리를 살짝 절게 되긴 했지만 어느덧 용맹하고 오만한 청년이 된 이 남자는 뿌리가 알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러나 여차저차 자신의 운명만을 겨우 알게 된 남자는 현타가 오지만 그마저도 피해보려고 방랑길을 떠난다. 그렇게 정처없이 떠돌다 좁은 길에서 어느 노인과 우연히 부닥치게 되는 남자. 가뜩이나 얄궂은 운명에 속상하던 남자에게 노인의 꼰대같은 태도가 기름을 끼얹고 만다. 결국 남자는 하릴없이 노인을 죽인다.


리얼 남자로 거듭남을 느끼게 된 그는 신이 난다. 내친 김에 운명을 제대로 리모델링하고자 수수께끼로 나그네를 괴롭힌다는 어느 괴물을 처치하러 떠난다. 마침내 ‘사람’이 답인 수수께끼를 통과하고 괴물도 처치해 그 나라의 왕이 된 남자. 덤으로 남편 없던 왕비와 결혼도 하고 자녀들도 얻는다. 여기까진 남부럽지 않은 휴먼드라마.


그러나 운명이 개척된 듯 보였을 뿐, 오히려 남자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 이미 실현돼버렸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오게 된 나라는 아버지의 나라. 죽인 노인은 그의 아버지요, 그가 얻은 왕비는 그의 어머니고 그는 원래 그 나라의 왕자였던 것. 사실을 알게 된 아내이자 어머니는 자살하고, 괴로움에 남자 역시 핀으로 두 눈을 찌르고 또 다시 방랑길을 나선다.


“내 발이여,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한편 어머니와 통정해서 낳은 딸이자 여동생은, 오빠이면서 아빠인 이 남자의 고행길을 따라나서고 그를 보살핀다. 착한 딸. 착한 여동생. 그러나 이 남자는 결국 죽음을 맞는다. 피하려들수록 당겨지는 비극의 무한루프.


그리고.


홀로 다시 제 나라로 돌아온 착한 딸. 이 착한 딸 위로 오빠 둘이 있는데 아비가 없는 틈에 권력다툼을 벌이다 번갈아가며 통치하기로 합의한다. 문제는 큰오빠는 제때 넘겼는데 둘째오빠가 정권교체를 안해주더니 오히려 형을 쫒아낸다. 화가 난 큰오빤 이웃나라의 도움을 받아 군을 이끌고 자기 나라를 치러 온다. 결국 두 형제는 치고받고 싸우다 둘 다 죽고 이들의 외삼촌이 왕위를 물려받는다.


이 삼촌은, 남자의 작은 아들은 나라를 지켰다고 장례를 성대히 치러주고, 남자의 큰아들은 자기 나라를 공격했다고 시체를 길바닥에 버리라 명한다. 그러나 이 착한 딸은 오빠의 시체가 길바닥에 있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어 기어이 명을 어기고 시신을 매장한다. 삼촌은 불같이 화를 내더니 착한 딸을 지하감옥에 쳐넣는다. 그녀 역시 감옥 안에서 스스로 목을 맨다. 피하려들수록 당겨지는 죽음의 무한루프.


그리고 부록. 착한 딸을 짝사랑하던 삼촌의 아들은 그녀가 죽자 따라 죽고 아들이 죽자 그 엄마 역시 뒤이어 자결. 삼촌집안도 풍비박산. 피하려들수록 당겨지는 파멸의 무한루프.


셰익스피어가 쓴 4대 비극이 비극 맛집이라면 고대 그리스는 비극노포들이 즐비한 먹자골목쯤 되시겠다. 그 골목서 탄생한 명작, ‘퉁퉁 부은 발’이라는 뜻의 이름,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 Oedipus’ 와 그의 딸 ‘안티고네 Antigone’ 이야기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 여기서 나왔다.


소포클레스는 무려 2천 5백년 전 즈음, 아테네에 살았던 정치가요 장군이었지만 동시에 음악가요 연극계의 ‘죽은 전설’. 평생 1백여 편이 넘는 희곡을 썼고, 당시 비극경연대회에서만 수십 차례 우승을 따냈던 인물이다. 뿐일까. 지금은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출연진을 세 명으로 늘린다거나 배경막을 설치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연기를 구체화하는 등 현대 서구 연극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특히 비극의 원인을 ‘신’에서 ‘인간’으로 가지고 내려온 건 혁신중의 혁신.


자, 그럼 당신은? 크흣, 딱히 할 것도, 피할 것도 없다. 그저 열심히 살면 될텐데 말이다. 지금은 신의 시대가 아닌 인간의 시대니까 말이다.



호모 트라게디우스¹ : Homo Tragedyus 비극적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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