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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나 Oct 15. 2020

죽은 개를 기억하는 방법

16년 5개월을 산 난이 이야기

  말도 안 되게 작은 유골함 이었다. 직원은 그 작은 단지를 보자기에 싸서 분홍색 종이가방에 넣어주었다. 화장로에서 나온 유골을 분쇄기에 넣기 전 나에게 확인해 보겠냐며 물었지만 난 거절했다. 등을 돌리고 멀찍이 떨어져있었다.

“참 작지요?”

“그러네요.”

유골을 본 엄마와 직원이 대화했다.  

  

  며칠 전부터 예고되었던 장마가 시작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김포의 한강 상류의 철책선을 따라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강으로 흔적 없이 빗줄기가 담기고 있었다.

‘집에 가자. 고생했다. 다 끝났어.’

마음속으로 이야기 해 주었다. 유골함이 담긴 종이백에 온기가 있는 듯 착각이 일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는 우산이 의미 없을 정도로 옆으로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종이백을 안젖게 하려고 품에 안았다. 차마 백에 달린 손잡이끈에 두세 손가락을 걸어 흔들며 걸을 수가 없었다. 정류장 광고판에 반사된 내모습이 보였다.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분홍색 종이가방을 안고 있는 것 같은 내모습. 잠시 애견장례업체의 비품 선정 센스에 개탄했다. 그런 비싼 아이스크림은 행복할 때 웃으며 먹는 것 이니까. 정류장은 퇴근시간을 맞아 제법 인파가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내가 안고 있는 분홍색 백의 정체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의 개는 1997년 5월 애견숍 에서 25만원을 주고 샀다. 크기가 새끼 치고 큰 개를 아무도 사가지 않아서 사료만 축내는 상황에 사장은 애가 탔을 것이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견종 요크셔테리어. 개를 한 번도 키워보지 않은 가족이 개를 샀다. 엄마는 외동이었던 내가 외로워하는 것이 미안해서 라고 했다. 이름은 난이. 못난이를 줄여서 만든 이름. 사실은 이보다 예쁘게 생긴 개를 본 적이 없었다.  

숨이 넘어가고 있는 개에게 끊임없이 이름을 불렀다. 가족들은 각자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는데 나 혼자만 큰소리로 염불을 외는 중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내가 지어준 이름을. 마지막에 해 줄 수 있는 게 이름을 외치는 것 뿐이라는걸 알았다면 좀 더 성의 있게 이름을 지어줬을 것이다.


  유골함을 안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틀어막은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온 가구를 들어낸 듯 허전한 집안에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 들어온 것처럼 서 있었다. 곧바로 작은 그림자가 스치듯 지나갔는데 1초 정도 난이라고 생각했다. 장판에 무언가 떨어지는 작은 소리도 ‘토도독’ 뛰어오던 그 애의 발자국 소리 인줄 알았다. 끊임없이 소스라치게 뒤돌아봤다. 전 날 밤새 기침을 하며 앓던 난이가 죽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다가 날이 밝아 동물병원을 두 번 다녀오고 유골함에 담겨 집에 오게 되기까지 하루가 걸렸을 뿐이다. 이렇게 16년 조금 넘은 생을 다살아냈다.

  당시 나는 결혼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있었고 난이가 죽은 다음 날 고대하던 곳에서 면접이 잡혀있었다. 몸뚱이를 이끌고 일상을 이어갔다. 울면서 지하철을 타고 면접대기실에서 울면서 대기하다 내 차례에 눈물을 닦고 면접을 보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면접에 합격하여 다음 주 부터 출근이 확정됐고 면접 다음날은 당시 예비신랑의 외가인 대구에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눈만 뜨고 숨만 쉬어도 눈물을 흘리는 통에 안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이미 일정을 준비한 신랑이 난처해 했다. 개를 잃은 내 심정은 이해받지 못했다.


  난이의 유골은 300년 된 동네의 큰 나무 아래 뿌려졌다. 출발하는 날 아침, 유골을 버리듯 뿌리고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녹차 티백 서너개 정도의 곱게 갈린 골분이 바람에 살랑 곡선을 그리며 흩어졌다. 신랑은 비 때문에 나무 아래 흙에 잘 스몄을 거라고 했다. 유골함은 어찌해야 하나 하고 방법을 몰라 하다가 신랑의 권유로 고속도로 휴게소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분홍색 종이가방과 함께.


  시간이 지나자 슬픔으로 금이  곳에 죄책감이 새어 나왔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입양을 가는 개들을 그 전까지 돌보는 임시보호를 하는 등 버려진 개들을 돌보는 것으로 그리움을 대신했다. 털 뭉치의 감촉이나 냄새가 허기져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상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프고 배고픈 길고양이를 돌봤고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뒤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은 비둘기를 내 쫒지 않았고 죽기위해 태어난 돼지와 소와 닭을 먹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난이가 명복을 받을 것 같아서 그랬다. 언젠가 한번은 정신과의사에게 개에 대해 이야기 했다. 기존 약보다 한 알 더 추가된 처방이 있었다. 난 내 슬픔을 덤핑처리 했다. 수치스러웠다.


  싱크대 상판에서 음식 부스러기를 물고 열심히 집 가는 길을 찾는 개미가 멈춰 섰다. 더듬이를 교차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신중을 기하다가 결심한 듯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시작된 여름, 비에 젖어 더 짙어진 풍경 안에서 참새가 몸통을 흔들어 빗물을 털어내었다. 그들 속에서 난이가 보였다. 세상의 모든 생물의 모습에 난이가 담겨져 있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들던 모습, 들썩이며 작은 숨을 쉬던 따뜻하고 위태로운 몸짓이 너무 보고 싶었다.


  유골이 뿌려진 그 300년 된 나무는 다음 해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울타리가 세워졌으며 누구든지 나무를 건드리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문구까지 달려지게 되어 출입이 엄금되었다. 뼛가루는 땅에 스며들어 양분이 되어 열매가 되고 일부는 개미의 밥이 되었을 거고 일부는 바람에 날려 멀리 여행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입과 코로 들어가 소화되고, 개미는 누군가에게 먹히고 그 누군가를 누군가가 먹고 나무의 열매는 새가 먹고 새를 누군가가 먹고. 이 모든 것들이 다시 땅으로 나무로, 나무는 연필이 되고 종이가 되고 책상다리가 되어 결국에 모두가 만나다가 하나가 되는 상상을 해 보았다. 나도 남도 난이도 책상다리가 되어 하나가 된 상상을.

  난이의 실체가 없어졌다. 하지만 존재의 흔적은 남았다. 충만했다. 내가 충만하게 슬퍼했으니 내가 충만하게 존재함이 증명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난이의 삶의 의미가 있길  바랄 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서로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아주 이타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가끔 내가 살아는 있는 건지 진짜 존재는 하는건지 헷갈릴 때가 있지들 않나.


 섬광같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어디서든 나를 보는 눈과 얼굴이었다. 저녁에 불이 다 꺼지면 난이는 혼자 나와 어둠 속에서 토독 토독 장판에 발톱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집안을 순찰했다. 자신의 우주였을, 가족들이 자고 있는 낡고 오래된 작은 빌라 301호를. 나는 그 귀엽고 애잔한 의식을 사랑했다. 내 방에서 이불을 덮고 가만히 누워서 난이의 발소리를 들으면 동선이 그려졌다. 안방에서 나와 거실을 한 바퀴 돌고 주방을 들러 물을 한번 할짝인 다음, 화장실도 들어갔다 나와서 마지막으로 내방으로 들르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잠깐 오도카니. 백내장으로 혼탁한 눈이 반짝였다.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뒤돌아서 내방을 나갈 때는 순찰의 의무를 다한 성취감과 권위를 느끼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던 뒷 모습을 기억한다.


  난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를 훨씬 더 많이 바라보고 사랑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사랑받았다. 멀리서도 날 보던 얼굴, 내 등 뒤에서 나를 바라보던, 개의 뒷모습이 시간이 이만큼 흐른 이제야 보였다. 난이의 죽음으로써 사랑이 증명됐다. 이것은 죽음의 기능 중 하나이다.


  난이가 죽고 나서 7년 동안 친정식구들은 난이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우리 개를 같이 추억하지 않았다. 죽은 뒤 인화한 난이의 사진을 보고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난이가 누워 숨을 몰아가며 죽어가던 친정집 거실 한 가운데에 그 자리에 세 살, 다섯 살 내 아이들이 뛰어논다. 난이가 잠을 자던 안방구석에는 행거가 세워졌다. 옷들이 걸려 졌다. 사료를 먹고 물을 할짝이던 곳에는 싱크대 하부장이 새로 세워졌다. 흔적도 없는 말끔한 공간들이지만 나는 떠올린다. 기억한다. 이 모든 것이 시간에 새겨져 공간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가족 모두가 알고 있다. 한 번도 난이를 본 적 없는 나의 첫째 아이에게 난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멍멍이라고 했다. 난이 할머니라고 알려주었다. 이렇게 난이를 아는 사람이 한명 더 생겼다.


  아주 가끔 개의 꿈을 꾼다.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꿈속의 나는 분주하고 조급하다. 아픈 개를 안고 이리저리 뛰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나를 반기는 개를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며 내 할 일을 하기도 하다가 '아차, 내 개는 죽었잖아.' 하면 꿈에서 깨는 것이다.  우리 개는 다른 차원, 다른 세상 어디쯤에서 계속해서 나에게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만 작별인사를 하고싶다. 붙잡느라 하지 못한 작별인사를. 평안하기를,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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