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이탈리아의 마피아처럼
미래는 어둡고, 나는 그것이 미래로서는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1915년 1월 18일,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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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시가가 피우고싶다.
마지막으로 속편하게 빨아본 것이 벌써 6개월도 넘었다. 기왕 피우는거 너구리굴 같은 골방에서 외롭게 피우기 보다는 시가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 피우고싶다. 여성들이 시가를 피우는 모임을 만들고싶어졌다. 처음이어도 상관없고, 비흡연자여도 상관없으니(나도 비흡연자다), 여자들이 눈치보지 않고 시가 연기를 죽죽 뿜어댈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가는 위스키와 찰떡처럼 어울린다. 입 안에 연기를 머금었다 후우 뿜어내고 위스키를 마시면 술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단맛이 피어오른다. 역시, 지금 당장 시가가 피우고 싶다. 몸에서 가장 민감한 기관 중 하나라는 혓바닥의 미뢰가 오소소 돋아나는 것을 느껴보고 싶지 않으세요? 독하기만 해서 먹고싶지 않았던 위스키가, 입 안에서 각설탕처럼 구르는 것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몸이 근질근질하다. 여성들이여, 위스키를 마시고 시가를 피워라! 세상에 레이디스 앤 젠틀맨은 없다. 젠틀 우먼과 젠틀맨이 있을 뿐이다.
시가가 피우고 싶다는 것은, 술이 마시고 싶다는 것은 세상에 불만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관광경영학과를 다니는 지금은 모든게 신경쓰인다. 장애인은 당연하게 관광에서 배제되는 인원인걸까. 미디어의 해악은 차치하고 도래할 멀티버스와 가상현실을 이야기 해도 될까. 다크투어리즘은 관광의 형태로만 소비되고 그 이상은 업계 밖의 분야인걸까. 학교의 안팎에서 머릿속이 복잡다난하다. 건물에 예외없이 턱과 계단이 있는 것, 장애인 화장실이 따로 없는 것, 공식 행사에서 예외없이 검은 치마정장에 5센치 구두를 신어야 하는 여학생들. 세상에 보기 좋은 것은 보기 싫은 것들을 죄다 밀어버린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여자가 이렇게 많은데. 나는 신사숙녀라는 말이 싫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레이디밖에 없었고, 세상은 나에게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남성 전용 바버샵, 남성문화의 전유물인 테일러샵 앞에서도 나는 숙녀였다. 신사들이 문을 열어주고 의자를 빼주는 것이 나의 약함과 남성의 신사도를 증명하려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나는 숙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젠틀 우먼이 되고 싶다!
젊음이 곧 무기이던 시절에 바텐더를 시작했다. 그때는 칼만 뽑으면 세상이 알아서 넘어져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하다보니 넘어지는 것은 나 혼자였다. 헛발 걸려 넘어지고, 풀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남의 발에 걸려 넘어지며 수십번을 굴렀다. 그래도 그곳이 너무 좋다면, 홀려도 단단히 홀린거다. 바는 사람을 홀리는 곳이다.
불빛이 은은하고, 앞에 앉은 이의 눈동자가 아름다워 보이며 알코올이 술술 들어가는 곳이 바로 바다. 바와 술과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에 풍덩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위스키, 럼, 진, 칵테일, 그리고 손님, 모든 것들의 이야기. 칼처럼 다려진 셔츠를 유니폼으로 입었다. 멋진 멜빵을 하고 셔츠 소매를 잡아주는 암밴드를 색깔별로 모았다. 내 몸에 딱 맞는 테일러 수트를 제작해준 재단사도 바에서 만난 손님이었다. 매일밤이 화려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선상 파티같았다. 그 사이에 있으면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고 독한 술이 꿀처럼 달게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바를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운치에 흠뻑 젖었으면 좋겠다고, 한 잔이라도 오롯이 자신의 입맛을 즐기며 마시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정말로 바에서 마시는 술은 유난히 달다. 없는 돈에서 쪼개고 쪼개 주문한 칵테일이며 위스키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소중하게 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알코올이 혀 위에서 뒹굴다 증발한다. 식도와 간 점막에도 술기운이 돈다. 이 귀한 술들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해줘야 한다.
바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소비금액의 기준이 다른 부자들과 어울려보았고, 물담배와 시가도 처음 해봤다. 위스키의 은근한 향을 잡는 것은 물론이고 칵테일과 양주의 역사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까지 귀에 들어왔다. 물론 삐딱한 일들도 많았다.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편하게 바텐더로 일을 하고 성공할 만큼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때로는 불쾌한 시선들도 따라붙는다. 이렇게나 눈부시고 행복한 곳에,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바 안에 서있으면서도 성별과 몸에 대한 자괴를 느끼면서 일을 해야 하다니 서글픈 일이다. 바는 나에게 바텐더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바텐더'와 '여자 바텐더'. 나는 바텐더가 될 수 없었다. 늘 '여자 바텐더'였다. 그 옛날 나와 같이 '바텐더'였던 여자들은 지금 카페에 있고 베이커리에 있고 사무직에 있다. 술을 떠난 그 곳은 자유로운지, 그녀들이 지금도 칵테일을 만들던 그때와 똑같이 웃고 있는지 묻고싶다. 가끔은 그립지 않니? 돌아오고싶지 않니? 아직도 술에 목을 매는 나는 내 앞에서 바텐더였던 당신들이 그리운데.
이제는 나도 변하고, 바도 변하고, 세상도 변했다.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하는지 고민하느라 골머리가 썩는다. 바 안에는 여성이 있다. 바 앞에 앉은 여성도 있다. 바 안에 있다가 더이상 바로 돌아오지 않는 여성도 있다. 언젠가 바로 들어오고 싶다는 꿈을 꾸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바텐더가 되고싶은 여성들이, 술을 좋아하는 여성들이, 혼자서도 마음편하게 음주를 즐기고 싶은 여성들이 여전히 이 문화를 계속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째서인지 기필코 여자를 깔아뭉개려는 일들을 산발적으로 마주치게 되지만, 그래도 더 당당하게 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은 당분간 어두울 예정이다. 이 어두움이 미래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세상은 지금보다 한층 더, 다른 차원으로 어두웠을 것이다. 세상의 미래는 밝았던 적이 없었다. 지구가 둘로 쪼개지지 않고 내가 죽지 않는다면 이 우중충하고 구질구질한 세상을 지겹도록 살아가야 한다. 시가를 피고, 술을 마시고, 레이디가 아니라 젠틀 우먼이라고 외치면서.
바 안에 있는 여자들에 대한 글을 쓰고싶다. 정말로 술과 바를 사랑한, '여자 바텐더'들의 이야기들이.
역시, 시가를 피는 여자들의 모임을 만들어야 겠다.
모임의 이름은 우먼 스모크 시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