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May 14. 2023

Bar-13. 천국도 아닌데 술을 마신다

천국은 언제쯤 들어가 볼 수 있을까?



음주는 천국에서 하라


무함마드, <코란>


*

코란에서는 술을 금하고 있다.(코란 5:90-91) 그러나 천국에서는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다(코란 56장 18).


오늘은 회사에서 거창하게 진행하는 외부 행사가 있어서 거기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오랜만에 잘 차려입고 가죽가방을 들고 있으니 영 남의 옷을 입은 듯 낯선 느낌이다. 술 근처에 오래 있으면서 느끼는 것은, 술은 운치와 행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술에 뭔가를 기대하는 순간 빠져 죽는다. 뭔가를 잊을 수 있도록, 취할 수 있도록, 사랑을 찾을 수 있도록. 술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걸, 무엇도 소중한 나를 술독에 빠뜨릴 수는 없다는 걸 스스로가 알고 있어야 한다. 술은 힘이 세고 아름다운 녀석이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술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거꾸로 잡아먹힌다. 취하는 것을 즐기되 취하기 위해 마셔선 안된다. 취한 것을 인지하되 자신을 놓아버려선 안된다. 그릇된 행동을 보여서도, 기억을 잃어서도 안된다. 이것이 술 근처에서 살아가는 나의 지론이다. 술은 위험하고 사람들은 그걸 쉽게 잊는다. 긴긴 역사에서 인간이 서로를 죽이고 죽임 당할 동안 끈덕지게 살아남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코와 혀를 홀리고 뇌를 뒤흔드는 것. 그것이 술이고 담배다. 심장 근처를 수상할 만큼 달콤하게 만드는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 천국을 너무 빨리 찾아오게 하니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분에 넘치는 의복을 입고 천국 대신 이승에서 불순한 음주를 하러 가야 한다. 몸이 둥둥 뜨는 것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목소리가 흥겨워지는 것을 내리누르며. 아직은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술을 마신다. 천국에 있는 술은 이 맛이 아닐 것 같아서 일단 마신다. 그리고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것, 거꾸로 술에 잡아먹히지 않는 것. 마음을 달뜨게 하는 것을 그만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만 생각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것. 오래 머무르지 말고 잠깐 있다가 후다닥 나와야겠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밤은 불안하니까. 자꾸 마음을 달뜨게 하는 게 생각나니까.


왜 나는 아직 천국이 아닐까. 천국은 언제쯤 들어가 볼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Bar-12. 여성들이여, 시가를 피우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