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Jun 10. 2022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독립운동가 박열과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





참으로 사람다운 삶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삶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삶은

타자에 눈뜨고 거듭 깨어나는 삶이다.


철학자 레비나스의 


*


아빠네 집에서 책 정리를 너무 열심히 하고 만 건지 이틀 내내 기운이 나지 않는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해야 할 일은 쌓여있는데 토퍼 깔린 침대에서 뒹굴거리고만 있다. 해야 할 일. 내가 해야 할 일은 뭘까.


동생에게 운전연습을 시킨다고 태안에서 비포장도로며 바닷가 도로를 쏘다녔다. 아빠가 추천해준 중화요리 맛집도 다녀왔다. 셋이서 위스키며 맥주를 흥청망청 먹다 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새벽 다섯 시까지 맥북을 붙들고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었다. 하마터면, 하마터면 죽도 밥도 되지 않을 뻔했다.


동생이 첫 고속도로 운전을 했다. 옆에 있는 나도 기가 쪽 빨렸다. 서울 바닥에서 하는 운전은 꼭 액션 영화 같아서, 집채만 한 트럭이 창문 옆으로 다가올 때 들어놓은지 얼마 안 된 나의 생명보험을 생각했다. 새벽 내내 잠을 안 자는 바람에 억지로 아침까지 눈을 붙이고 출발했는데,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해보니 벌써 면접시간이 간당간당하다. 새벽에 작업한 피피티가 들어있는 유에스비를 대충 가방에 쑤셔 넣고 화장도 하지 않은 채로 지하철을 탔다. 눈이 자꾸 감긴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가까스로 시작시간 8분 전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았다. 청년강사 지원 프로젝트에서 서류심사를 통과해 얻은 면접 자리였다. 하품이 쩍쩍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열댓 명의 강사 후보들의 발표를 모두 들었다. 내 발표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럭저럭 잘 끝났다. 두 시간에 걸친 면접을 끝내고 곧바로 지하철을 탔다. 저녁에는 이미 선정된 청년강사 프로젝트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집으로 가기엔 시간이 애매하고, 한 시간 정도 남는 시간에 무얼 할까 하다가 돈까스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갔다. 평일 이른 오후라 사람이 없다. 육식을 멀리하고 있던 차라 두 달 만에 사 먹는 고기 요리다. 지금껏 가왔던 많은 돈까스집을 비견해도 월등하게 좋은 후기들이 많아 기대가 된다. 오랜만에 하는 외식이 고기라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며칠 전에도 돈까스가 당겨 차까지 끌고 나갔다가 주차장이 없어서 먹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입맛만 다시고 있느니 한번 제대로 먹고 훌훌 털어버리는 게 낫다. 눈앞에 놓은 죽은 돼지의 살은 정갈하고 맛스러웠고, 나는 샐러드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오랜만에 고기를 먹으며 느낀 것은 생각보다 정말 기름이 많은 요리라는 것이다. 오미자 마요네즈 드레싱을 얹은 양배추를 아무리 먹어도 식도까지 느끼한 기분이 들었다. 먹고서 삼십 분은 속이 부대껴 혼이 났다. 그래도 맛있게, 후회 없이 먹었다. 고기의 느끼함을 오랜만에 알았으니 당분간은 또 버섯과 가지로 잘 버틸 것이다.

저녁에 있던 오리엔테이션은 좋은 분들과 신나는 분위기로 진행됐다. 자기소개를 하고, 많이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과로 빵을 주셨는데, 돈까스를 먹었다는 핑계로 소시지빵과 크림치즈빵 중에 후자를 골랐다. 그 빵은 동생이 맛있다며 다 먹었다.

그러고 집에 와서 부랴부랴  하나 썼다. 아빠랑 노느라 하루는 이미 날려먹었고, 지금부터라도 하지 않으면 또 글 쓰는 법을 잊어버릴 같아서. 퇴고 한번 했는 자정이 되었다. 나는 열두 시도  되기 전에 잠들었다.


오늘은 친구를 만나고 왔다. 싱가포르에 갔다 와서 오랜만에 보는 녀석인데, 현충일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나와서 함께 서대문 형무소를 가게 되었다. 한 군데 한 군데 전부 둘러보니 세 시간이 걸렸다. 선선하니 좋은 날씨였는데도 형무소 안은 차갑고 무섭다. 옥사를 돌아다니며 얼마 전에 생가를 다녀온 신채호 선생이 생각났고, 강풀의 웹툰 <26년>에 나왔던 문익환 목사의 사진을 마주쳤다. 올해 초 읽은 <남영동>의 저자 김근태 운동가의 감방도 들어가 보고, 아들의 분신자살 이후로 운동가 활동을 한 이소선 여사의 행보도 보았다. 지하의 고문실과 여옥사는 서있기에도 괴로운 곳이었다. 미루고 미뤄왔던 영화 <항거>를 보아야겠다 다짐만 하고 있다. 형무소를 갔다 온 날 밤 보기에는 악몽을 꾸기 딱이니까. 안 그래도 밤마다 현 정부에게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느라 꿈속이 부잡스럽다. 오늘 문 밖을 서성이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러웠던,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갇히는 상상을 했다.


열한 시에 만나서 세 시간을 둘러보니 근처에 식당들이 전부 브레이크 타임이라는 것을 깜박했다. 아무 데나 들어가서 게살 로제 파스타와 가지 그라탕을 먹었다. 그라탕 속에서 씹히던 야들야들한 소고기가 마음에 걸린다. 밥을 먹고 천천히 걸어 경복궁으로 갔다. 고궁 박물관을 둘러보니 조선의 역사와 고운 궁 모양이 한눈에 보인다. 주변을 몇 번이나 드나들면서도 관람할 생각 한번 하지 않았던 고궁박물관을 친구 덕분에 들어가 봤다. 언젠가 조선의 왕실에 대하여 글을 쓰게 된다면 꼭 다시 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알찬 전시였다.

우연찮게 깃이 달린 고구려 한복을 입고 와서 경복궁을 무료로 들어갈  있었다. 매번 바깥만 지나가고  안을 보는 것도 얼추 십 년 만이다. 여전히 아름답고 아득하게 넓은 터였다. 고궁박물관에서 초입부터 보았던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안 되는 색깔로 절정의 미를 뽑아낸 화려하면서도 단정한 단청도. 지붕 위에 늘어선 서유기의 청동상도 달리 보인다.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오백 년 동안 건재했던 조선이다. 아직 왕권이 건재할  유교와 성리학의 나라 조선. 관광객들이 두런두런 돌아다니는 궁궐 안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돌아다녔다는 것을 생각하면,  궁중 암투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를 생각하면   좋은 날씨에 착잡해진다. 설렁설렁 돌아다니자고 해놓고  많은 것들을 했다. 대중교통에서 틈틈이 브런치에 올릴 글도 쓰고 글쓰기 워크숍 원고도 작성하고 글방에서 합평할 글도 적었다.  와중에 조별과제가 겹쳐서  역할을 네가 하네 내가 하네 총대도 잡았다. 오늘도 하품이 쩍쩍 나온다.


이런저런 책을 읽어나가며 생각한다. 사실 1945년 8월 15일 난데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독립선언은 천지가 개벽할 만큼 거대한 일이 아니었고, 누군가는 하던 일을 계속했으며, 누군가는 독립이 된 줄도 모르고 있었고, 그날 서울의 거리는 여느 때보다 조금 수군거리는 것이 다였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영화처럼 온 국민이 태극기를 들고 뛰어나오거나, 거리가 축제 분위기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만세삼창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고. 살다 보면 나라를 빼앗기고 다시 찾고 전쟁도 나듯이, 사람의 인생에서는 그저 똑같은 한 날일 뿐이었을 거라고.

또 생각한다. 늘 찾아 헤매던 독립운동가들이 육이오 전쟁 전후 이승만에게 처형당하며 씨가 마른 것도 있지만, 독립 직후에 기생집과 요정을 찾아다니며 독립운동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여느 인간이 그렇듯이 독립운동가라고 무조건 강직하고 선했을 리도 없는데, 나는 혼자서 우상화를 하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어떤 독립운동가는 새 정부에 몸을 얹어 권력을 잡고 유곽의 번성에 이바지했다. 어떤 독립운동가들은 이승만의 행보에 못 견뎌 가족을 두고도 월북을 했다. 대대손손 독립운동을 했던 김일성이 곧장 친일세력을 완전숙청하며 사회주의 운동가들을 환대했기 때문이다. 북한 정부의 탄압에 못 견뎌 월남한 친일파들은 남한에서 강한 반공주의를 보였다. 인간의 내면만큼이나 복잡다단한 내 나라의 현대사. 양면을 나눌 수 없는 사상 싸움에 지긋지긋하게도 매달리고 있다.

나는 진정 사람답게 살고 있는 걸까. 이 정도의 사람스러움으로 충분한가. 그냥 존재함의 차원에 만족하는 조용한 인간은 못 되는 것 같다. 피투성이 역사를 마주할 때마다 피로해 죽겠는데도 눈을 번쩍 뜬다. 그리고 자꾸만 생각한다. <항거>를 봐야겠다고. 대전 형무소도 가봐야겠다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도, 빌어먹을 박정희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청와대도 전부 한 번씩 돌아봐야겠다고. 이런 게 깨어나는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것만으로도 피곤한데 장애인권이며 동물권 노동권 환경권 아동권도 내 눈꺼풀 위아래에 테이프를 붙이고 놓아주질 않는다. 깨어나는 게 아니라 수면부족 상태인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위스키와 칵테일만으로도 머리가 꽉 찼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작은 뇌에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타인과 역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드는 것도 보람이다. 전보다 더 사람같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듭거듭 깨어나고만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순간부터 비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