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아프다고 경고 좀 해주지
라섹수술을 했다. 이 고통을 만천하에 알리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다. 이런 고통을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다니. 백칠십만 원을 주고 지옥 같은 이틀을 보장받다니!
각막이 얇다고 하니 어떻게 해도 선택권이 좁디좁았다. 회복이 빠른 것도 안돼, 바로 눈이 잘 보이는 것도 안돼, (돈이 없긴 하지만) 렌즈를 삽입하는 것도 안돼. 나에겐 라섹뿐이었다. 맨 각막을 생으로 깎아서, 새살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관운장의 심정이 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지금 나는 격렬하게 후회 중이다. 운전할 때 선글라스 좀 못쓰면 어때서. 렌즈값이 한 달에 십만 원씩 나가면 어때서! 그냥 태어날 때부터 나약하고 저하됐던 시력으로 남은 평생을 살 걸. 바보처럼 엄마가 해준다는 말에 덥석 미끼를 물지 말걸!
아파 죽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어제까지의 아픔을 죽어도 잊지 않으리라는 발악이다. 라섹, 하지 마세요. 주변에 추천하고 다니면 내가 인간이 아니다. 이것은 흡사 자해공갈이나 마찬가진데 나에게 보험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돈까지 가져간다. 한두 푼도 아니고 백여만 원을! 무려 수술 후 삼 개월까지는 꼼짝없는 비보험!
라섹하지 마세요. 그것은 고통입니다.
병원을 가기 전까지는 팔자가 좋았다. 은행에 가서 카드도 만들고 통장도 파고, 당근 마켓에서 판매한 물품을 룰루랄라 우체국에서 보내고 송장을 찍고. 병원에 가서 마지막 상담을 받을 때도 해맑았다. 많이 아픈가요? 진통제를 따로 준비해야겠지요? 블루베리라던가, 수술 후에는 눈에 좋은 걸 먹는 게 좋을까요?
아이돌처럼 생긴 남자간호사는 자기도 라섹을 했는데 그냥 눈이 좀 시릴뿐 먹는 진통제까지는 전혀 필요치 않을 거라며 하하 웃었다. 참 예쁘게도 웃었다. 그 미소에 홀려서 나도 껄껄 거 참 내 걱정이 지나치구료 하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수술 직전에 안내해주는 간호사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라섹이시죠? 자외선 특히 조심하셔야 되고요, 조금 많이 아프실 거예요.
그렇게 아픈가요?
네, 많이 아프세요.
뭐야 아까 좀 시리기만 할 거라던 천사 같은 간호사는 어디 가고 두개골 안까지 꿰뚫을 것 같은 눈빛으로 나는 기필코 아플 것이라는 분이 앉아있다. 어어, 잠깐. 나도 그렇게까지 아픈 건 싫은데. 두 번 물어봐서 두 번 다 무조건 아플 거라고 어깨를 쓰다듬어주는 건 별로 위로가 안되는데. 한 달이 넘는 대기기간 동안 내 상담을 도맡았던 것은 아까 그 아이돌이었다. 지금까지 수줍게 아유 참 별로 안 아파요. 다음날이면 금방 일어나셔요. 당일부터도 핸드폰 컴퓨터 문제없지만 블루스크린 차단 안경만 써주기로 해요. 하던 사람은 어디로 가고. 정말 그렇게 아픈가요? 네 당신은 꼭 아픕니다.
아 네..
수술실로 올라가는데 이때부터 발이 달달 떨렸다. 눈꺼풀을 핀으로 고정해서, 눈앞에 파란 레이저가, 오징어 타는 냄새가 날 거야..
어디서 주워 들었던 주변의 경험담들이 마취약 들어간 눈알 뒤에서 들려왔다. 아이고 어지럽다. 이 시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눈 딱 감고 한 번만 참으면 돼. 하는데 눈을 못 감는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감고 싶을 때 눈을 안감은 적이 없는데. 내 눈알이 강제로 뜨여있다고?
다리가 또 달달 떨린다. 라섹, 뭘까. 나 꼭 이걸 해야 됐던 걸까. 나 왜 한다고 했지? 미치겠다. 수술실을 박차고 나가기에도 너무 늦었다. 아이돌 간호사의 얼굴만 아른거린다. 배신자. 자기만 안 아프게 라섹하고. 그래서 나도 별로 안 아플 것처럼 말해놓고. 배신자.
인생 첫 수술이다. 새파란 방호복을 입고, 긴 머리를 머리망에 욱여넣고 대기 의자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명상을 했다. 얼마나 아프지? 2, 3일은 아프다는데 36시간 내내 아픈가? 어떤 아픔이지? 다른 기관은 몰라도 눈알이 아픈 건 진짜 불쾌하고 싫을 것 같은데.
그래도 시간은 닥쳐온다. 내 눈알을 레이저로 지져야만 하는 시간.
정신이 없어서 기계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보지도 못했다. 엉거주춤 누워있으니 주변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린다. 000 환자, 라섹, 각막 강화, 프라임 컷입니다. 웅성웅성. 두런두런. 그래 내가 그래도 아끼는 눈알이라고 이것저것 덤을 붙여서 제일 비싼 걸로 하기는 했지. 거 안 아프게 좀 부탁드립니다. 안 아프게.
눕자마자 눈알에 고정기가 박혀서 위아래가 쫙 찢어졌다. 외부 충격에 약한 점막 안에 다짜고짜 딱딱한 것이 비집고 들어오니 이물감이 심하다. 눈앞에 빨간 점이 아른거린다. 저 점만 보세요, 움직이시면 안 돼요. 감아도 안돼요. 손을 올려도 안돼요. 화려한 레이저가 말 그대로 눈알의 한 치 앞에서 어룽거린다. 녹색으로 변했다가, 부채춤을 추다가, 언젠가 마블에서 보았던 양자역학 장면의 그래픽처럼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오른쪽 눈의 시술이 끝났다. 왼쪽 눈을 할 때는 사고를 좀 쳤다. 오른쪽보다 근육이 너그럽지 않은지 눈두덩이 살을 고정해 놓고서도 계속 눈을 감으려고 드는 통에 눈동자가 위쪽으로 숨고 움직이고 난리도 아니었다. 눈이 계속 감긴다고 쩔쩔매도 의사와 간호사 입장에서는 그러시면 안 된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내 어깨를 토닥토닥해주고, 손에 인형을 쥐여주고, 약간 초점을 올리고 나서야 수술이 진행되었다. 늘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생각하지만, 이 시간만 지나면 끝날 거야,의 순간에서 왜 이만치도 시간은 가질 않는지. 천년 같고 만년 같고 까마득한지. 비틀비틀 수술실을 걸어 나오니 시야가 밝았다. 안경 없이 보이는 또렷한 세상에 두리번거리기도 잠시, 내 어깨를 두드려준 간호사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쐐기를 박았다.
2, 3일 동안은 많이 아프실 거예요. 눈 비비지 마시고,.. 마시고..
약 처방을 받으러 약국을 들어갔는데 다정한 약사가 동생의 팔뚝을 움켜잡은 심봉사 같은 나를 보더니 혀를 쯧쯧 찼다. 아이고 어쩌면 좋아. 많이 아플 텐데. 엄청 아플 텐데. 우리 딸이 해봐서 아는데 정말 죽을 만큼 아프다더라구..
그렇구나. 이제 아플 일 밖에 남지 않았구나. 개인차에 따라 다르다던데, 혹시 나는 별로 안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
개뿔. 똥구멍이 빠지게 아팠다. 병원을 나설 때부터 오른쪽 눈에 탄산수라도 부은 것처럼 시큰거렸는데, 집에 와서는 양쪽 눈이 다 따가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이렇게 철철 울어대서야 처방받은 안약을 어떻게 넣는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때까지가 차라리 견딜만할 정도였다는 걸 밤이 되면서 알았다. 눈을 못 뜨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본격적으로 깎아낸 각막을 면도칼로 살살살살 긁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눈을 감아도 아프고, 눈을 떠도 아프고, 안약을 넣어도 아프고, 안넣어도 아프다. 고문을 견디는 것처럼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자니 어디 가서 독립운동 할 깜냥은 못되겠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무엇을 위한 아픔이더냐. 도대체 돈을 주고 나는 왜 이러고 있어야 한단 말이냐.
어지간해서는 엄살을 부리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정말 아팠다. 원체 눈이 잘 붓지 않는 체질이라 정말로 사람 눈이 눈가 살에 파묻혀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구나 처음 알았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잤다가 깼다가를 반복하니 숭하고 험한 꿈만 몇 번을 꾸었다. 눈은 아프고 식욕은 없고 진통제는 몇 개씩 씹어 넘겨 속이 쓰리다. 그래, 차라리 나라가 바뀐다면 내 감내하겠다. 고작 나 하나의 밝은 시야를 얻겠다고 이게 무슨 일이냐.
통증이 있는 곳이 하필 눈이니 두려움은 더 까마득하다. 이 모든 현상이 며칠 뒤면 아무렇지 않게 나아지긴 할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눈은 뇌랑 너무 가까운데. 약간의 통증만 느껴져도 너무 무서운 기관인데 이틀 내내 눈알 위로 분갈이 모래를 쏟아놓고 흙발로 비비는 듯한 아픔이 계속되니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견디고 비장애인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눈이 먼다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준비하려면 나는 뭘 해야 하지? 아주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막말로 내 돈을 갖다 바치고 내 눈 좀 아프게 해줍쇼, 라고 벌인 일의 고통이 이 정도인데 혹시라도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일에 내 몸이 아플 일이 있다면 분노를 참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 뇌로 작동하여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소중한 거죽과 뼈대들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에 의한 사건으로 훼손받게 되면 그에 대한 울분은 참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늘 침입받는 것이 싫었다. 세균도, 상처도, 매질도, 남자도, 내 몸에 위협을 가하는 모든 경우의 수가 전부 싫었다. 이렇게 (말 그대로) 사서 앓아누워있자니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왜 늘 화가 나있었는지도 새삼 다시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만족할 만큼 지키기엔 세상에 참 녹록지 않고, 내 몸이 안온하면 머릿속이 어지러워지며 내 머릿속이 편안하면 내 몸이 위험하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아침까지도 시야가 불분명해 핸드폰 속의 글자가 뿌옇게 보였다. 밤에는 눈곱에 절어 안약을 넣을 만큼 눈을 뜰 수도 없었다. 그래도 과연 눈알을 박박 긁은 고통은 이틀째 밤이 지나자 많이 나아졌다. 그래서 이렇게 팔자 좋게 글도 쓰고 넑두리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다.
라섹하지 마세요. 이것은 고문입니다. 세상에 있는 인간 중 적어도 한 명에게는 감히 독립운동가의 고초을 떠올릴 정도로 아픈 경험이었어요. 이런 걸 백여만 원의 돈을 주고 경험하라고 하면 서럽단 말입니다.
내가 아픈 것이 싫기 때문에 가능하면 타인도 아프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내가 아픔을 증오하기 때문에 타인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에게 적의를 품게 된다. 모두가 아프지 않은 게 가장 좋지만, 그건 모든 사람의 시력이 1.5이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일이겠지.
내가 수술을 할 수 있게 카드를 내어준 엄마가 말했다.
많이 아파? 그렇게 까지 아플 줄 몰랐어. 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
엄청나게 후회하지만, 죽을 만큼 아팠지만 그래도 지금은 괜찮아졌어. 하지만 주변에 누가 한다면 온 힘을 다해 말려야지. 이건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정말.
지금도 집안은 불 하나 켜지 못하는 동굴 같은 상태고, 왼쪽 눈은 근육맨한테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퉁퉁 부었다. 나참, 그래도 그 판타지 같은 레이저 빛에서 이만큼이나 살아남은 내가 참 기특해서 이 글을 써야겠다. 라섹이 눈만 좀 시리고 끝난다고요? 아니, 아닙니다. 조금만 더 갔으면 집 앞에 개울인 줄 알고 요단강도 건넜겠어요. 라섹하지 마세요.
아픕니다. 너무 아픕니다.
그냥 안경 쓰고 살아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