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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May 18. 2023

당신도 그분의 팬이신가요?

장국영을 위한 장소, 카페 레슬리

그리운 레슬리


“인간의 가장 잘못된 습성이 죽음의 순간에 대해 생각해 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안 그러려고 애써도 소용이 없죠. 좋은 죽음이었는지, 나쁜 죽음이었는지, 남겨진 우리는 생각하고 맙니다. 그러면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이고 어떤 죽음이 나쁜 죽음인지, 전부 자기가 판단하게 되는 겁니다.(후략)”


유미리, <우에노역 공원 출구> 중


*

나는 지금 고양에 있는 카페 레슬리에 앉아있다. 여기저기에 장국영의 얼굴이 새겨진 목판과 포스터가 붙어있고, 그가 생전에 불렀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침까지 척척하게 비가 오는 날씨였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등 뒤로 따스한 햇살이 내린다.

혼자 온 내 자리는 빛무리가 고스란히 비치는 리넨 커튼의 바로 앞이다. 지금 장국영은 수려한 발음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를 속삭이는 중이다. 그가 출연한 모든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안다. 아비정전, 춘광사설, 영웅본색을 좋아한다. 모든 게 진하지만 아득할 만큼 아끼는 영화는 패왕별희다. 깨질 것 같은 슬픔으로 사랑받는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층고가 높은 곳이라 답답하지 않다. 평화롭고 아늑하다. 여기저기 붙은 장국영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주인분이 나에게 묻는다.


“그분의 팬이신가요? “


그의 팬이라고 하기에 나는 뭔가 부족한 것 같다. 나도 그의 팬이라고 불리고 싶었는데. 그만큼, 사정없이 빠져들고 싶었는데.


”팬까지는 아니고. 이 사람이 출연한 영화를 몇 개 좋아해요. 제 동생이 정말 팬이거든요. 방을 포스터로 도배를 해놓고, 이과수 폭포 조명도 사고. “


머쓱해서 변명을 하다가 말았다. 장국영의 카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꼭 여기에 와보고 싶었어요.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모여있는 장소는 편안하니까.

어쩌면 나도 그의 팬인지 모르겠다.


올해는 그의 20주기다. 살아있는 사람이 떠나간 지 20년이 되는 해. 아직 피와 몸이 있는 채로 나이 든 그를 상상하게 되는 20년, 우수 가득한 눈으로 늙어가는 양조위와 젊었던 한때 손을 잡고 탱고를 추었던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20년.

장국영을 생각하면 죽음을 너무 많이 떠올리게 된다. 책 속의 문구를 보며 이게 얼마나 그에게 무례한 짓인가를 생각한다. 인간의 나쁜 습성, 삶을 두고 죽음으로 판단하려 하는 것. 그가 보여주고 떠난 것보다 그가 죽음으로써 나와 세상이 잃어버린 것들에 집착하는 것. 자꾸만, 나와 같은 시간에 살아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마치 그의 죽음이 나쁜 죽음이었다는 듯이.


남겨졌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그가 우리를 버리고 간 것처럼, 끊임없이 그의 삶과 작품을 기다렸던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고 떠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좋은 죽음도 나쁜 죽음도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슬퍼하고 곱씹고 추억할 것밖에 없으니까 그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매달린다. 더 이상 알 수 없는, 죽은 사람이 저승으로 가지고 가버린 그의 삶에 대해서.


추모도 장례식도 따지고 보면 전부 뒤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보내주기 위한 의식.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는 죽음은, 정말로 보내기 싫었던 누군가에 대한 애도라는 생각이 든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장국영이나, 에이미 와인하우스나, 세월호의 아이들 그리고 고 노 대통령의 서거일 같은. 상황도 나라도 형태도 다르지만 뭔가 이렇게는, 이렇게는 보낼 수가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해가 지나도, 몇 년이 지나도 우리가 겪은 잃음에 대한 상실을.

그 사람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세상을, 그들이 돌아와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직도 이렇게 부끄러운 세상을.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울리고 서글프게 하고도 여전히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목소리는 감미롭고 눈동자는 촉촉한 채로 영원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있다. 장국영이라는 배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어 없어지기 전까지 그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 이따금 튀어나오고 가만히 하늘을 보게 하고 끝내는 울리기도 할 것이다. 그 죽음은 도대체 왜 그 사람에게 찾아갔을까, 원망하게 하면서.


어떤 죽음은 그렇다.

나도 그의 팬인가 보구나. 그가 없는 20년이 이렇게 서글픈 걸 보니. 주름이 깊게 파이도록 나이 든 그의 얼굴이 사무치게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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