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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Sep 30. 2023

이게 글이 아니면 뭐가 되나요

글의 정의가 대체 뭔데요?


글은 적어도 세 가지 중 하나는 담겨야 한다.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 곧 새로운 지식을 주거나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감정을 건드리거나.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


낄낄.

김해 김 씨 집안의 가훈이 있다.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 ‘


남의 인생에 훈수질 두는 것은 참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작가 은유의 신중한 문장을 ‘글은 적어도 세 가지 중 하나는 담기는 게 좋다.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

셋 중 단 하나도 풍족히 담아본 적 없는 인간이라 괜히 빈정 상한 게 아니냐고 한다면, 그것도 맞다. 세 가지 중에 들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그건 글이라고 말해야겠다. 자음과 모음, 단어와 띄어쓰기가 줄줄줄 늘어서있는 활자 덩어리는 아름답거나 고매하거나 서정적이지 않아도 글이다. 그걸 글이 아니라고 하면 달리 또 뭐라고 할 건데요. 글의 정의가 대체 뭔데요. 세상에 똑똑한 인간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인식적이고 정서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한 것들만 모아 글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추하고 너저분한 찌꺼기만 좋아하는 인간은 서러워서 살겠냐고요.


그래서 오늘도 (기성작가의 문장에 따르면) 글 같지도 않은 것을 싸지르러 왔다. 내가 쓰는 게 뭐가 됐든 나는 이 짓을 하는 게 신나고 통쾌하니까! 가치? 무언가를 만들기 전에 그것부터 생각하면 세상에 인류는 늘어날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무한하고, 변수투성이에 어디로 뻗을지 모르는 망나니 같은 생물종이 가치 있는 것만 뱉어낼 거라는 가정은 꿈같은 망상이다. 글을 써도 읽지 않는 이가 인류의 대부분이고 인식적인 가치를 500페이지에 구겨 넣은 논문은 다른 논문을 쓸 때를 제외하곤 찾아다니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가치 있어야 되는 것만 글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인생이 재미 없어지잖아. 마치 가치를 누군가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마냥. 왜 찍혀나갈 모든 글에 점수를 매기고 채점을 할 것처럼 굴어요. 손가락으로 똥만 타이핑하는 사람 긴장되게.


지난주에는 남양주에 있는 스튜디오를 다녀왔다. 초대형 컨테이너에 달도 넣을 수 있고 하늘도 넣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촬영장이었다. 우리 회사의 새 브랜드 메시지를 가득 담아서 비장하게 제작되는 광고 촬영의 첫날. 요 근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는 뮤지션이 이번 시즌의 모델로 들어왔다. 실제로 얼굴을 보니 참 바르고 참한 사람이다. 제품샷을 찍는데 표정도 자세도 몸짓도 연예인 태가 난다. 역시 연예인은 달라도 뭐가 다르구나. 나는 그 사람이 하이볼을 만들고 칵테일을 섞을 때 옆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역할을 했다. 감이 놓이고 배가 놓이고 나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럴듯해 보였다. 비싼 장비와 호화스러운 촬영장, 길쭉 단단한 모델들의 맵시를 실컷 구경하고 달 떠있는 고속도로 한 시간을 달려서 상경했었다. 외근이랍시고 신나게 놀고 왔다가, 지금은 추석 연휴를 즐기며 뭉개고 있다는 무가치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무안하게시리.


그리고 나는 궁금해진다.

글이 어떻게 사람에게 새로운 지식을 주거나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감정을 건드린다고 생각할까? 어쩌면 그렇게 글을 믿을 수가 있지? 글은 그저 글일 뿐인데. 정전 한 번에 날아가는, 화재가 나면 소실되는.

나는 글은 잘해봐야 타는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글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이다. 글자를 만들고 문자를 써낸 것이 사람이듯, 그 결과물을 앞에 두고 생각을 하는 것도 사람이다. 자음과 모음 단어와 띄어쓰기가 줄줄줄 나열된 문장들로 사유하고 공명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글이 아니라 인간이 하는 일이란 말이다. 왜 붙어있는 글자들이 사람의 뺨을 때리고 뇌의 주름 속으로 심장의 판막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간 것처럼 말을 하지? 그런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은 서운한데요. 전 글보다 인간이 좋아요. 그 사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글이라 그 사람이 쓴 책이 좋아요. 사람이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아요. 그게 글이니까요.


글은 쓰는 사람이 쓰고 싶은 걸 써내면 그만이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 나는 내가 싸지르는 것을 글이라고 부르고, 내 글을 꽤 좋아한다. (작가 은유가 말하는) 글이란 것에 필요한 세 가지 덕목 중 하나는커녕 1/2개도 없지만, 그나마 비슷한 게 들어갔더라도 실수로 집어넣었을게 분명하지만. 나는 나를 벗어나버린 문장에 가치를 부여할 만큼 능력 있는 인간이 아니다. 그나마 나 같은 인간이랑 딱 붙어 있어야 롯데리아 새우버거의 새우함유량만큼 미미한 가치라도 생기는 것이다. 내 글한테 말하고 싶다. 내가 없으면 너 혼자 뭘 어쩔 건데. 대신 세상 사람 중 ‘적어도’ 한 명은 변함없이 내 글을 좋아한다. 내가 열심히 좋아해 준다. 누구도 봐주지 않을 글이 되지 않도록 계속 칭찬도 해주고 자랑스러워할 거다.


누가 너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소리 듣지 마. 봐, 너 잘 살아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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