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Nov 09. 2023

무언가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서평인가 봐


사랑꾼 아저씨 조지 오웰.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 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 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일 것이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어느 서평자의 고백’ 중


*

쓰기 싫은 걸 죽어도 안 쓰려는 인간으로서 조지 오웰에게 존경심까지 느껴졌던 부분이다. 어떻게 재미없는 책의 서평을 착실하게 작성해 대가를 받을 만큼의 글을 만들 수가 있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달라도 뭔가 다른가 보다. 솔직함을 접어두고서도 그럴듯한 글을 써서 남의 지갑에서 돈을 빼 올 수 있는 것. 명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고개는 끄덕일 만큼의 완성본을 내어 놓는 것. 그리고 혼자 쓰는 일기에서는 시니컬하게 세상 대부분의 책이 형편없음을 조잘거리는 것까지 못 견디게 귀엽다.


나는 가치 환산에 냉정한 편이라 내 시간과 기운을 허비하는 모든 것에 짜증이 난다. 재미없는 책, 무가치한 영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 전부 같은 맥락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면 어중간한 것들이 걸러지고 양질의 매체들이 삶을 채운다. 그것은 마음이 잘 맞는 친구이기도 하고 내 기준에서 이상적인 직장이나 내 입맛에 딱 맞는 레스토랑이기도 하며 백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영화나 책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것에 둘러싸여 이타심이 부족하고 관용 없는 사람이 되었다. 조금만 내키지 않아도 시큰둥해져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의 서평을 쓴다는 것은 그저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칭찬할 구석을 찾고, 못마땅한 곳에서 장점을 발굴하고, 유려한 솜씨로 예쁜 문장을 붙여주는 것. 그것은 글 자체를 사랑하는 어떤 행위다. 나 같은 사람은 결코 할 수 없는.


앨리스 먼로의 <거지 소녀>는 중반부에 들어설 때까지 큰 매력이 없었다. 제사 크리스핀 <죽은 숙녀들의 사회>도 줄곧 체념적인 작가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보니 내가 그 책에 대해서 썼던 글에는 호평만 남았다. 몇 마디 뾰족한 말로 전체를 뭉뚱그리는 것은 좋은 작품을 포기하는 길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문학과 예술 매체에서는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끝까지 읽음으로써 이 책의 전부를 사랑하게 되었다. 중간에 내 입맛이 아니라고 팽개치지 않아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한 책을 알게 되었다.


서평가는 대단한 사람이다. 좋은 것에도 탐탁지 않은 것에도 힘과 주의를 기울여 서평을 써야 한다. 어딘가에 내보일 만한, 대가를 받아낼 만한 글을. 쓰기 싫은 글을 쓰지 않고 보기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나 같은 인간에게는 심히 본받아야 할 인간 군상이다. 나의 좋음과 싫음 보다는 타인에게 보일 누군가의 작품을 염려해 주는 것. 다수에게 읽힐 글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문장과 표현을 교정하는 것. 전부 대단한 일이다.


조지 오웰의 솔직함 덕분에 속이 시원하다. 가려운 구석을 벅벅 긁어주는 에세이다. 세상에 대부분의 책은 형편이 없지만 그 형편없는 책들의 서평을 주구장창 써야 하는 어느 서평자의 고백.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마음가짐이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도 누군가가 쓴 책의 서평을 썼을 조지 오웰. 존경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글을 쓰는 당신을.





매거진의 이전글 평생 남을 구멍일 줄 알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