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Nov 12. 2023

Bar-18. 인류 최악의 단어

음주랑 운전, 너네 둘은 친하게 지내지 마



인간은 운전을 하도록 진화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알코올에 노출되지 않은 경우라도 지각 및 운동 능력에 허점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반응 시간이 늘어난다거나 의사결정을 못하고 멈칫하는 등 신경운동 능력을 떨어뜨리면서 알코올은 심각한 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음주운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점점 더 잘 알려지고 있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도 해칠 수 있다. 그렇지만 음주 운전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인간이 알코올에 끌린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엄청난 양의 약물이 공급되는 상황에서 인류의 감각은 과부하 상태에 있다.


로버트 더들리, <술 취한 원숭이> 중


*

'음주운전'. 말만 들어도 무섭다. 바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 살벌한 단어다. 음주운전 방조죄 처벌이 강화되고 업계에서는 말이 많았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손님의 의사에 단호하게 대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리운전 명함을 쥐여주고 이렇게 가면 위험하다고 손을 붙잡아 말려도 직접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업장은 억울하다, 손님이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냐 하며 항변한다. 이 곤란한 상황이 비일비재할만큼 이미 음주운전이라는 편법이 사회에 자리를 잡아버렸다는 것에 통탄한다. 술은 인간을 부르고 인간은 운전을 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발로 뛰어서 수렵 채집을 하는 잡식 동물. 음주 운전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인류 역사 최악의 불협화음인 것이다.

지금 근무 중인 회사는 음주운전 적발 시 징계위원 회부 없이 즉각 퇴사다. 술에 취한 정도를 표로 잴 수 있다면 나는 모든 술자리에서 스스로의 취기에 놀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아직 저 정도까지는 아닌데. 별로 안 취했는데. 아직 넉 잔은 더 마실 수 있는데.

인간은 술을 해독할 수 있지만 술독에 빠져 살도록 진화하지는 않았다. 술잔을 손에 들고 몸이 느끼는 모든 것이 취기다. 취기는 뇌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요리조리 피해서 다음날 최악의 상황을 만드는 것을 즐긴다. 음주운전은 다음날에 있을 상황에서 최악 중에서도 최악, 목숨을 담보로 곡예를 한다. 나는 그렇게 많이 취하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인간이 진화에도 맞지 않는 쇳덩어리를 타고 다니면서 "현대판 호환"이라고 불리는 교통사고가 등장했다. 호랑이가 물고 갈 만큼 큰 상해와 비견되는 교통사고. 도로의 무서움은 내가 누굴 죽일지, 누가 나를 죽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피 튀기는 사고 속에 100:0 과실의 '무고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가. 음주운전은, 12대 중과실 중 하나다. 사망률에 재범률까지 높은 악질이다. 하지만 음주운전자의 수는 줄지 않고, 국가가 내리는 갖은 방책에도 사고율이 올라간다. 음주운전은 기필코 하면 안 되는 것인데 초장에 잘못들인 버릇이 내내 속을 썩인다. 나 역시 직접 운전대를 잡고 나서야 자동차가 얼마나 위험한 기계이고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가 불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아빠가, 버스 기사님이 운전할 때는 발을 밟으면 스르르 움직이는 커다란 기계가 아늑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는데 그것이 얼마나 멋모르는 생각이었는지도.

그래서 술기운을 업고도 이 복잡하고도 과열된 차체에 올라타는 심리를 알 수 없다.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면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 피치 못해 입에 술이 들어가게 되면 대리운전을 불러야 한다. 혹은 택시로 집에 가서 나중에 찾으러 오거나. 인간은 운전을 하도록 진화하지는 않았지만 머리하나는 잘 굴리는 종으로 설계되었다. 술이 고프다면 차를 놓고 오면 되고, 차가 있는데 술을 마셨다면 운전을 안 하면 된다. 여기에서 자꾸 술도 마셨는데 운전도 해야겠다는 선택지가 끼어드는 것이 용납이 안된다. 음주운전, 붙어있으면 안 되는 두 개가 너무 가까운 인류 최악의 단어라니까.


술과 알코올이 인체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변호하고 싶지는 않다. 지당한 말들이고 애주가로서 필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다. 술을 사랑할 땐 운전을 잠시 놔두고 운전을 사랑할 땐 술을 뒤켠으로 보내는 것 역시 애주가의 덕목이다. 둘이 같이 있는 순간을 상상도 하지 않는 것. 술과 상식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음주를 즐기고 싶다. 거리의 폭탄 같은 잠재적 위협요소이자 사고 재범률을 높이는 분자가 아니라, 지구 구석에서 조용히 술이나 홀짝이고 고꾸라져 자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물론, 다른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죽지도, 접촉사고가 나지도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음주 너는 상식이랑이나 딱 붙어 다녀. 엉뚱하게 운전 옆에 얼쩡거리지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Bar-17. 대감집에서 하는 머슴살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