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개띠야
아버지는 녀석을 나무에 매달아 불에 그슬리면서 두들겨 패지 않을 거라고 했어.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오토바이의 시동이 걸리고, 아버지는 달리기 시작해. 개도 함께 달려.
한강, <채식주의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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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 지 칠 개월 만에 조직이 개편됐다. 나를 뽑아놓은 팀장님은 다른 팀으로 훌렁 넘어가 버리고 데면데면 인사만 나누었던 사람이 나와 내가 속해있는 팀을 이끌게 되었다. 지난주 화요일부터.
매일을 젤리 속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회사에서 그나마 나를 뽑은 팀장님 아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없다. 그래도 새 팀장님 역시 멋진 분이다. 군더더기 없고 확실한 덴버 팀장님.
계약기간은 2년이고, 나는 이 회사에서 더 일하고 싶은데, 뭔가 해놓은 것도 없이 벌써 7개월이 지나버렸고, 남은 1년 5개월 동안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부끄럽지 않게 재계약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했더니 그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말아요. 그냥 할 수 있는 것들을 기억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계약 같은 건 이미 한참 전에 지나있을 거야.
생각해 보면 바에 서있는 건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두들겨 맞는 시간이었다. 기쁘고 행복한데 어쩔 수 없이 몰려오는 탈력감. 시한부 직종이라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노동. 지금은, 음. 적어도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복지를 주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내 명함에 적혀있는 밸류는 업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번에는 아마 달리다가 죽는 개가 된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불에 그슬린 것보다는 더 부드러운. 남의 입 속에서 누군가를 호강을 시키는. 내 목줄은 운전석 옆에 보조석까지 달린 근사한 외제 오토바이에 걸려있다. 94년생 개띠. 나는 언제나 행복한 개였으니까 불만은 없다. 회사가 오토바이의 시동을 건다. 팀장은 한껏 늘려놓은 목줄을 놓치지 않도록 단단히 쥔다. 바퀴가 회전하고, 나는 달린다.
달리다가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대.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참 궁금하다. 어디서 어떻게 달리다가 죽은 개를 땅에 떨어진 밤송이 주워 먹듯 냉큼 끓여 먹은 걸까. 달리다 죽은 개는 어느 인간의 내장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소화되었을까. 그 개는 정말 매달리고 두들겨 맞고 그슬린 개보다 부드러웠는지, 정말 그렇게나 많이 부드러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