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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an 02. 2024

이게 세상의 끝이 아니야

bgm. 모자이크- 자유시대

https://brunch.co.kr/@kimgood4440/201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

눈 덮인 강원도.



“이게 세상의 끝이 아니야. 해도 죽지 않아. 매일 아침 널 위해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리고 오늘 밤 해는 물속으로 빠지지 않아. 어떤 나라로 가서 자고, 다른 나라로 와서 일어나는 거야. “


폴란 데비, 마리에 테레즈 쿠니, 돌 람발리 <한 여자의 선택> 중



*

정초부터 아사히 맥주에 영화 <과속스캔들>을 보면서 질질 짜고 있다. 올드블루가 닫는다는 소식을 들은 이유로 기회만 생기면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영화를 봐도, 음악을 들어도, 뮤지컬을 봐도 훌쩍훌쩍 운다. 사랑이 더 잘 느껴진다. 진실함이나 감정 같은 것에 민감해져 버린 시기.


올드블루가 없어진다고 세상이 끝나는 건 아니다. 일주일 한 달로는 충분하지 않을 만큼 틈틈이 슬픔을 뽑아내야 할 뿐. 중국의 산아정책 비판을 담고 있는 영화를 봐도, 3대가 혼전 임신을 한 코미디 영화를 봐도, 미국을 건국한 위인들의 뮤지컬을 봐도 운다. 학교에서 학생과 선생들이 즐겁게 락앤롤을 하는 영회를 보면서도 운다. 저 작은 아이들의 미래가 눈부시기를, 하고 청승을 부리면서. 노을 지는 하늘과 5년 전 바 안에 있던 사진을 봐도 운다. 그냥 운다. 계속 운다. 지금 나는 울리기 쉬운 사람이다. 얼마든지 울어줄 수 있다. 눈물이 나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부족함 없이 울어도 다음날 눈이 붓지 않는다. 아무도 내가 호텔방에서 혼자 운 것을 모른다. 올드블루의 마지막 날 나에게 영상전화를 걸어준 매니저님 말고는, 나에게 새해 덕담을 건넨 마스터 말고는 모를 것이다. 아무도 울려주지 않아서 혼자 울 일을 만들고 다닌다. 평창의 알파카 카페에서 알파카를 사랑하는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다 또 찔끔 울었다.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랑은 이렇게나 따뜻한데.


생각해 보니 어제의 문장은 반절이 잘려있었다. 저 문장까지 적은 줄 알고 실컷 글을 썼더니 정작 사랑이 듬뿍 담긴 것은 뒤에 남겨져 있었다.

해는 죽지 않고, 매일 아침 사랑받는 사람을 위해 다시 일어난다. 사랑받는 사람의 태양은 밤에도 물속으로 저물지 않는다. 그저 출장을 갈 뿐이다. 연인이 잠들 만큼의 시간 동안만, 연인이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비춰주러.


모자이크의 자유시대를 들으며 글을 쓴다. 살아가는 건 내 마음이겠지, 능력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단 한 명 사랑하기도 쉽자 않은 세상에, 상처받을 그 사람을 생각해.


문장 하나에도 눈물이 나는 새해다. 작년부터 내내 이 꼴이다. 해도 바뀌었는데, 그곳도 사라졌는데. 나도 내 맘대로 뜨는 해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물집에 찬 진물을 빼내는 것처럼 한껏 울면서 시작한다.

괜찮아. 나쁘지 않다. 살아가는 것도 내 마음이고, 이게 세상의 끝은 아니니까. 올드블루가 사라진 세상에서 이틀째 삼일째 태양은 뜨고 있으니까.


행복한 새해다. 눈물 따윈 아랑곳 않고 눈부시게 새하얗게 아름다운 새해였다. 하늘 위 천사들의 날개가 다 거덜 나지는 않았는지 걱정될 만큼. 또 인간들 기쁘게 해 주느라 깃털을 뽑히고 생닭 같은 꼴을 하고 있을 천사 떼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웃겨서 웃는다. 즐거워도 웃고 감동해도 웃는다. 슬퍼서 우는 건 2023년 12월 31일이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새해니까, 우스운 일에만 눈물이 날 만큼 웃어야겠다.

해피뉴이어, 다들 행복한 연초를 보내고 있기를. 하늘에서 내린 눈만큼의 축복을 보낸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사랑했던 장소에, 시간에, 추억에,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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