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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an 27. 2024

알고 있었지요?

사실 아직도 나는

당신이 모른대도 상관없어요



알고 있었지요? 내가 얼마나 당신의 언어와 그 언어를 만든 정신이 필요했는지. 야생을 길들이는 당신의 용기에 내가 얼마나 의지했는지. 당신은 결코 나에게 상처 주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나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었지요? 내가 당신의 사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은 알았을 테지요. 그렇다면 당신을 떠나보내는 게 재앙은 아닙니다. 축제입니다.


1987년 12월 8일, 미국 뉴욕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 토니 모리슨의 제임스 볼드윈 추도식 연설 중


*

장례식에 가는 길이다.

믿고 의지하는 과장님에게서 부친상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어차피 오후 늦게 약속이 있어서 조금 일찍 준비하고 집을 나왔다. 겨울 속에 내 모습이 까마귀처럼 새까맣다. 과장님이 많이 울지 않고 지나치게 슬프지 않으면 좋을 텐데. 웃는 얼굴이 유독 예쁜 사람, 적막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지금 서있을 곳을 생각한다. 웃음이 가까운 자리는 아닐 것이다.


로드롤러처럼 앞길을 닦아가는 분이라 참새마냥 그 뒤를 쫓아다녔다. 짧은 시간에 신세도 많이 졌고 귀한 가르침도 받았다. 업주들을 만나는 입장에서 과장님과의 동행은 등에 부스터를 단 것처럼 에너지가 넘친다. 존경하는 분이다. 이미 이태원이며 홍대의 거리거리가 그분 손에 꽉 잡혀있지만 늘 덜 고생하고 많이 사랑받기를 바라는 마음.


<보이지 않는 잉크>에는 정말 주옥같은 문장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이미 떠나간 사람에게 알고 있었지요?라고 묻는 것은 정말 그가 알았기를 말하는 게 아닐 테니까. 미리 전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이제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정들을 알고 있었지요?라는 물음으로 다시 꺼내오는 건 아닐까. 다른 누구도 아니고 토니 모리슨이 제임스 볼드윈에게. 그녀가 얼마나 떠나간 사람에게 깊이 마음을 의지했는지가 느껴져 심장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단단하고 심지 굳은 사람도 언젠가는 죽는다. 건너편에 있는 제임스 볼드윈에게 알고 있었지요?라고 물었던 토니 모리슨도 지금은 저 건너편에 있다. 과장님의 아버님도,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도, 사랑하는 바둑이도 그 너머에.

나를 상처 입히지 않을 것들은 왜 전부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알고 있었지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이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천 번은 더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해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모습이 나에게 용기를 주고, 의지를 주고,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당신의 미소에 대고 더 많이 끌어안고 더 많이 마주 보고 더 많이 말해줄걸.


알고 계시겠지요?

내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가끔 참을 수 없이 보고 싶어 진다는 것을.


보고 싶어요.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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