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 프럼 어스>
이 영화는 우주를 닮았다. 까마득하고, 겹겹이 쌓이고, 마모되고 사라지는 것들을 떨궈낸 후에도 계속 팽창해가는 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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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거대한 폭발로 생겨났다는 가설을 처음 꺼낸 사람이 볼테르였다는 걸 아나요? 나사선 성운이 별 무리가 소용돌이치는 것이라고 처음 주장한 건 괴테였어요. 지금은 은하라고 부르죠. 과학적인 신개념이 예술가들의 입에서 새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건 흥미로운 일이에요.
영화 <맨 프럼 어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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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가 생각난다. “광활한 우주공간에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 따로 있을 수는 없으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에드거 앨런 포. 까만 밤이 까만 이유는 그저 까맘이 닿지 않았을 뿐이라던 에드거 앨런 포가. 그의 가설은 독일의 천문학자 올베르스가 별로 가득 찬 밤하늘이 그리도 까만 이유는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전이었다.
어떤 것은 창조된 채로 소멸해 본적도 죽어본 적도 없이 마냥 존재한다. 어떨 때엔 커지고 가끔은 쪼그라들며 구룩거리는 영생으로 거기에 있다. 이 영화에는 어떤 설명도 이유도 붙일 수 없다.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에. 한 철 살다 죽는 필멸의 인간은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손바닥 안에 담은 물처럼 고여있기 때문에.
난데없이 가른 배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조명 빛을 볼 때처럼,
한 번도 써보지 않은 폐에 첫 공기를 들이마실 때처럼,
해 본 적 없는 울음을 짜내기 위해 태반이 덕지덕지 묻은 엉덩이를 맞을 때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영화를 틀어야 한다.
나를 감동케 하고 눈물 흘리게 하고 즐겁게 하는 모든 작품들 속에서 이 영화는 홀로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조용하고 깊은 밤, 아직 더 살아가도 된다는 위로를. 유한이라는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발버둥을 멈추면 자연히 수면 위로 머리가 떠오르리라는 진리를 가르쳐준다. 그 언젠가 딱 한 번 본 것만으로 나를 좀 살고 싶게 한다. 다 괜찮을 거라는 안심이 들게 한다.
살아있으면 돼. 사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야. 살아있는 걸 멈추게 되면 그것 역시 바다의 파도 한 방울이 되는 일인 거지.
언젠가의 기억으로 나를 좀 더 살고싶게 만드는 영화. 리처드 쉔크만 감독, 2007년 작. <맨 프럼 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