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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 배드〉,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_3-1(번외)

감정과 행동 사이, 배우와 캐릭터 사이

by 김굳이

!주의!


본 글은 《브레이킹 배드》뿐 아니라 본 시리즈와 스핀오프 시리즈가 구성하는 "앨버커키 유니버스" 세계관 모두를 다룹니다. 따라서《브레이킹 배드》,《베터 콜 사울》및 《엘 카미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날 밤, 방 안의 두 사람과 한 사람의 침묵



그 장면은 시청자 모두에게 선명히 각인되었다. 제인이 질식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도, 월터는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엔 갈등의 흔적이 잠시 스치지만, 결국 그는 고개를 돌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소리 없는 윤리의 붕괴를 목격한다.


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이 장면을 촬영한 뒤 10분간 말을 잃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그가 다시 "브라이언"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그저 기다려주었다. (SlashFilm, 2023.03.31 https://www.slashfilm.com/1820037/bryan-cranston-breaking-bad-scene-tears)


감정적으로 완전히 몰입한 배우, 그러나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그가 연기한 월터는 감정을 행동으로 바꾸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마주한다. 감정과 행동이 분리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단절은 악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가?



감정은 존재하지만, 행동은 침묵했다


크랜스턴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장면을 찍으며 제인의 얼굴이 내 실제 딸의 얼굴로 보였다. 정말 무서웠다.” 감정적으로 그만큼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던 것이다. (SlashFilm)


하지만 그가 연기한 월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감정이 존재했지만, 그 감정은 행동을 이끌지 않았다. 그 순간, 감정은 아무 힘도 가지지 못했다. 감정이 윤리적 행동의 시발점이라면, 감정과 행동이 분리되는 순간은 윤리의 단절이다. 우리가 슬픔을 느끼고도 위로하지 않고, 공포를 느끼고도 멈추지 않으며, 죄책감을 느끼고도 책임지지 않을 때, 우리는 윤리의 경계선 너머로 나아간다.



월터의 침묵은 어떻게 선택되었는가?


제작 초기 단계에서 제인의 죽음 장면은 훨씬 더 어두운 방향으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빈스 길리건은 “월터가 훨씬 더 직접적으로 제인을 죽게 하는 구상도 있었다”고 밝혔다.

https://screenrant.com/breaking-bad-jane-death-worse/


제작진은 이 장면을 여러 방향으로 시도하다가 최종적으로 월터가 감정을 억누르고 방관하는 연출을 택했다. 즉, 감정을 억제한 침묵이 이 장면의 키워드다. 이 침묵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무감각이 아닌, 의식적인 절제를 동반한 '선택된 방관'이기 때문이다. 이는 윤리적 피로가 아니라, 윤리적 판단의 유예다.



감정과 행동의 단절, 그것이 낳는 악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도덕적 인간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과 함께 책임을 진다고 했다. 반면, 고통을 느끼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윤리적 자아를 착각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월터는 자신이 고통을 느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악하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는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제인을 살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윤리의 핵심은 행동이다. 감정은 출발일 뿐,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감정은 자기기만의 수단이 된다. 월터는 고개를 돌리며 무언가를 참아낸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넘긴 사람이다.



애런 폴의 눈물, 제시의 고통


이 장면은 배우들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제시 역의 애런 폴은 “그 장면은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촬영 후 그는 실제로 눈물을 참지 못했고, 다음 장면을 찍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Far Out Magazine, 2023 https://faroutmagazine.co.uk/hardest-scene-of-aaron-paul-career)


제시는 몰랐지만 시청자는 알고 있다. 제인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선택된 죽음이었다는 것을. 이 비극은 월터의 무행동, 다시 말해 감정은 있지만 행동이 없는 자의 침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슬픔을 느꼈다는 것이 면죄부는 아니다


감정과 행동이 단절된 자리에서 악은 자란다. 우리가 어떤 장면을 보고 분노하고 눈물 흘릴지라도, 그 감정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윤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월터는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행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고통을 핑계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원해서 그런 게 아니었어. 그리고 그 생각만 하면 나도 슬프다구” 그러나 결과는 남는다. 제인은 죽었고, 월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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