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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란 Jun 10. 2022

김씨의 덕질일기 8 : 아이돌 메이커

♪ 프로듀스 101 - PICK ME



하다하다 아이돌을 만든 적 있다. 학회 활동이었던 쇼케이스로 연을 맺은 과 선배님이자 연예 아카데미의 대표님께서 진행하셨던 전공 수업에서였다. 처음 시도되는 형식의 강의임에도 주제가 흥미롭다보니 인기가 많았는데, 나는 금공강까지 포기한 채 무사히 수강 신청에 성공했다. 학회에서의 경험과 그간의 덕질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다면 제법 쉽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나큰 오산이었다. 일단 실습 수업임에도 커리큘럼상 '실습'으로 처리되지 않아 학점에서의 편의를 받을 수 없었다(실습 수업은 일반 수업에 비해 A~B학점의 비중이 높다). 한마디로 고생은 고생대로 해놓고 D를 받을 수도 있었다는 거다. 심지어 품도 많이 들어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정상적인 프로젝트 진행이 가능했고, 메인 팀플과 별개의 팀플까지 따로 있었다. 발표 전 날 밤을 새다가 PPT가 날아갔을 때의 심정이란... 휴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


들인 노력에 상응하는 학점을 받기 어렵다보니 서로 경쟁도 심했다. 시발점은 캐스팅이었다. 우리는 한 예술고등학교와 아카데미에서 캐스팅을 진행했는데, 조마다 원하는 학생이 겹치다보니 더 빨리 데려가려는 과정에서 트러블이 생겼다. 심지어 이를 눈치 챈 어떤 학생은 양다리(?)를 걸치며 두 조를 간보기도 했다. 이 작은 불씨는 은근히 크기를 키워가다 학기말에 펑 터져버렸다. 강의 단톡에서의 일이라 고성이 오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존댓말로 상대의 잘못을 따지는 모습이 정말 살벌했다. 우리 조는 당사자가 아니었음에도 괜히 눈치가 보여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여기에 하나 더. 나는 모두가 기피했던 조장을 나서서 맡았다. 하룻강아지 뺨 치는 패기였다. 우리 조는 나를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이었는데, 좋은 조원도 있었지만 나쁜 조원도 있었기에 자연히 내 능력치 이상의 몫을 해야할 때가 잦았다. 분명 내 일이 아니었고, 내 몫보다 충분히 무리하고 있었는데도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하나' 싶어 자책하게 됐다. 우리 조에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그와중에 남한테 싫은 말은 또 못 해서 그저 혼자 울분을 삭히거나 친구들에게 털어놓을 뿐이었다.


다른 수업과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하느라 생애 처음 번아웃이 왔던 학기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때의 경험을 후회하진 않는다. 물론 기억이 미화된 탓도 있다. 나는 아무리 힘들었던 일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았다고 착각하는 몹쓸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교훈들을 많이 배웠다. 그간 별 생각없이 즐겨왔던 케이팝엔 숨은 노력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이라든가, 그래도 어엿한 행사 하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갔다는 성취감이라든가, 이렇게 잘난 사람들이 모두 잘 되는 건 아니라는 씁쓸한 현실이라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는 태도 같은 것들. (앞선 덕질일기에서도 언급했듯 난 서사에 환장하는 사람이다.) 엔터테인먼트 쪽 직군이라면 학을 떼다가도 이런 것들이 미련을 남겨 아직도 엔터 채용공고에 한두번씩 기웃거리곤 한다. 아무래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그때의 친구들 중 일부는 데뷔를 하기도 했다. 혹시나 싶어 구구절절 늘어 놓아 보자면, 나중에 친해진 언니들 팀에선 베***의 용*을 배출(?)했고, 페***의 가*은 강의보다 앞서 쇼케이스 활동을 통해 알게 된 아카데미 학생이었다. 엠net에서 두 번의 오디션을 겪은 배** 연습생도 아카데미 소속이었던 터라 쇼케이스와 강의에서 모두 만났다. 이렇듯 방송에 낯익은 얼굴이 나올 때면 세월이 새삼스럽다. 내 눈에도 어렸던 학생들은 나름의 자리를 잡고 있고, 고작 21살이었던 나는 여전히 방송계를 꿈꾸며 그 언저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땐 다 어렸으면서도 어린 줄을 몰라 힘들었던 적이 많은데 돌이켜보니 어찌저찌 시간은 지나 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유를 모르겠으나 이번 글은 완성까지 꽤 오래 걸렸다. (아무래도 글을 쓸 때마다 매번 추억팔이로 빠진 게 가장 큰 이유일 듯 싶다.) 거창한 결론을 내야할 것만 같아 마무리는 언제나 어렵지만, 어쨌든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다. 혹시나 나중에 방송국에서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면 "어 혹시 그때 그..?"라며 말 붙일 건덕지 하나 생겨서 좋긴 하다. 근데 까먹었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그냥 서로 파이팅하면 되는 거다. 오래 전부터 응원했어요. 잘 돼서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우리 인생 파이팅!



P.S. 강의가 소개됐던 카드뉴스가 생각나 첨부한다. (썸네일이 우리팀ㅎㅎ) 잘 지내니?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6131853038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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