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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란 Jan 19. 2022

김씨의 덕질일기 7 : 오프 뛰고 싶다

♪ 정세운 - 바다를 나는 거북이


오프 뛰고 싶다. 내 새끼가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는 걸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이 소리치고 싶다. 예전까지는 혐생 때문에 강제로 못 갔다지만 이젠 돈도 있고 시간도 있는데, 이놈의 코로나 자식은 괜찮아질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케이팝 정상화 어디까지 왔니...?


콘서트랑 팬미팅 가고 싶다. 소리도 마음대로 못 지르고 언제 갑자기 취소될지 모르는 반쪽짜리 행사 말고 제대로 된 행사. 몇 없는 친구들 끌어모아서 다같이 티켓팅 도전하고 싶다. 누군가는 실패를 직감하고 누군가는 이선좌를 보는 사이, 아무 말 없던 누군가가 됐다!!!!!라며 소리칠 때의 그 짜릿함. 크. 입금이 제대로 됐는지, 배송지는 알맞게 입력되어 있는지, 혹시 모르니 취켓팅은 언제인지 알아볼 때의 묘한 긴장감도 느끼고 싶다.


전날 밤엔 잠도 안 올 거다. 새벽부터 굿즈 줄 서야 해서 일찍 이불 덮어놓고선 눈은 말똥말똥하겠지. 그러다 어느새 잠에 들고, 다음날 아침 알람을 들으면서도 기분 좋게 일어나고 싶다. 빠뜨린 건 없는지 몇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가고 싶다. 지루하던 지하철도 응원법 몇 번 연습하고 공카 보고 트위터에서 나눔 이벤트 체크하다보면 금방 도착하겠지. 춥든 덥든 길게 늘어선 줄 끝을 찾아가서 미리 준비해온 딴짓이나 실컷 하고 싶다. 어느새 내 뒤로도 길어진 줄을 보면서 그나마 이 시간에 와서 다행이다 안심도 하고, 부스는 언제 열리나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옆 사람이랑 간식도 나눠 먹고.


부스가 연 뒤에도 한참을 기다리면서 품절 소식에 절망도 하다가 빨리 구매목록을 수정하겠지. 겨우 몇 개 산 뒤에는 간단히 점심 먹고 공연장 근처 뺑글뺑글 돌면서 달려가는 사람들 따라 가고 싶다. 앞사람한테 "이거 무슨 줄이에요?"라고 물으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비슷한 대화를 한 다섯 번 쯤 반복해야 제맛이니까. 그 와중에 손으로는 찜해놨던 이벤트 놓치지 않을까 끊임없이 트위터 체크하고, 나눔 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인사하면서 물품 보고 끙끙 앓고 싶다. 어차피 쓰지도 못하고 모셔둘 거지만 그래도 꼼꼼하게 다 챙겨올 거야.


입장하고 나서는 탁 트인 시야에 감탄하고 싶다. 왜냐면 난 평생 시야 좋은 자리를 갈 거니까^^ 단톡에 오바쌈바 하면서 생각보다 더 가깝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다. 점점 채워지는 옆자리에 눈치보다가 조심스럽게 준비해온 간식 한 묶음 건네고 싶다. 그렇게 수줍게 말 트고 나선 갑자기 켜지는 응원봉에 화들짝 놀라고. 다같이 오오오 하다가, 좀 잠잠해졌다가, 다시 또 색깔별로 변하는 응원봉에 다같이 환호하다가. 조명이 꺼지고 VCR이 나오는 순간 한달치 기운을 모두 모아 소리지르고 싶다. 내 새끼 목소리로 설명해주는 주의사항 열심히 듣다가 오프닝 곡 흘러 나오는 순간 일년치 기운을 모아서 소리지를 거다.


5분 같은 3시간을 느끼고 싶다. 한창 흥 올라서 재밌는데 아쉽게도 끝날 시간이라는 멘트 들으면서 어이도 없어야 한다. 엥 뭐 했다고 마지막이래? 아무리 방금 전까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퀴즈도 풀고, 미션도 하고, 벌칙(이지만 팬들은 좋아죽는 것들)도 받고, 감동타임도 갖고, 타이틀 수록곡 커버곡 골고루 불러주기는 했지만 5분밖에 안 지났다고요. 저희 방금 입장했거든요 분명;; 모두가 아는 가짜 엔딩을 들으며 인사하다가, 노래방에서 다져온 실력으로 앵콜 이벤트곡도 떼창하다보면 굿즈 티셔츠를 입은 내새끼가 다시 짠! 하고 무대에 나타나겠지. 우리는 또 환호하고. 찐막곡까지 부르고 나서도 내새끼랑 팬들 다 아쉬워서 미적거리고 싶다. 즉흥 무반주로 몇 곡, 공식 카메라 타임 몇 번 가지다가 미련을 잔뜩 담아 정말 인사하며 보내고 싶....진 않고 1박2일로 안되나요?


우르르 나와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내내 기억 잃을까봐 메모장에 끄적거리고 싶다. 이게 귀여웠고, 저게 예뻤고, 어떤 게 감동이었고, 모든 게 재밌었고 하는 주접이 반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고 싶다. 몰려오는 피로 속에서도 웃으면서 집에 들어가고 싶다. 다음날 근육통에 일어나겠지만 괜찮다. 어제 내 새끼가 귀여웠으니까.


사녹도 가고 싶다. 경기도민을 배려해주지 않는 녹화시간에 짜증나다가도 어느새 막차 시간과 택시비를 계산하고 싶다. 양식 다 써놓고 기다리다 시간 맞춰 광클하고, 명단 뜰 때까지 잔뜩 쫄려 있다가 스크롤 한참 내려 내 이름 발견하고 싶다. 음원 구매내역, 음반 풀셋, 신분증, 공식 팬클럽 가입내역, 응원봉 바리바리 챙겨서 방송국 앞에서 대기하고 싶다. 기약 없이 밀리는 녹화에 지치다가도 폴라 이벤트에 잠깐 힘내고, 들어가선 없는 체력 끌어모아 응원하고, 오늘따라 더 예쁜 내새끼와 스몰토크 하면서 좋아 죽고 싶다.


당연히 팬싸도 가고 싶다. 고작 30명 뽑는 영통팬싸 말고요. 내 자리가 있는 100명짜리 대면 팬싸. 혹시나 싶어 응모해놓고 기대 안 하는 척 한껏 기대하다가 내 이름 뜨면 소리지르고 싶다. 포스트잇이랑 아이템 뭐로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부랴부랴 준비하고. 당일엔 좌석에 앉아 남들 하는 거 보면서 내가 할 말 연습하고 싶다. 어차피 올라가면 손에 땀만 나고 제대로 말도 못 할 거면서 말이지. 내 차례 되면 심장 쿵쾅소리 들으면서 인사하고, 눈코입 하나하나 뜯어보다가도 정작 나랑 눈 마주치면 부끄러워서 눈 피하겠지. 집에 와선 영상 돌려보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내새끼의 스윗함도 발견하고 싶다.


하여튼, 쓸 말은 많지만 그대로 다 썼다가는 졸업논문 뺨칠 것 같아서 이만 줄인다. (줄인 거 맞음. 진짜로.) 오프가 없는 케이팝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람. 어찌저찌 흘러는 가겠지. 하지만 속상하겠지. 최선이 아니겠지. 있을 때 잘 할 걸 후회의 눈물을 흘리겠지! 내가 딱 그 심정이다. 조금이나마 돈 있고 시간 있을 때 좀 쥐어짜서라도 써야했는데... 화양연화는 언제나 과거인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굿즈들에게 하루 빨리 새로운 친구가 생기길 바라며. 하나도 안 아쉽지만 코로나는 저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세륜코로나... 케이팝 앞에서 사라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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