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온통 내가'와 '응답 바람' 사이에서

by 김고양

1학년을 마쳐가는 겨울, 내 입대 환송회에서 그녀는 공일오비의 '이젠 안녕'을 불렀다. 그녀는 우리 밴드부에서 베이스를 쳤다. 그녀와 동아리 공연을 함께 한 적도 있었다. 꽤나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흥얼거림은 몇 번 들었지만 노래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표정 속에 서로 말 놓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 음악 속에 묻혀 지내 온 수많은 나날들이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 됐네-'


오늘은 너희 둘이 사귈 줄 알았는데 결국 사랑 고백 노래가 아니라며 친구들은 실망했다. 그것도 이해할 수 있는 게, 나와 그녀는 유독 친했다. 낮에는 각자 수업을 듣고, 저녁나절엔 동아리방에서 만났다. 함께 저녁을 먹고 밤을 보냈다. 노래를 듣고 합주를 했다. 날씨가 좋으면 잔디밭에서 치킨을 먹었고, 날씨가 흐리면 호프집에서 술을 마셨다. 친구들은 항상 너네 둘이 사귀지 않으면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냐며 우리의 연애를 종용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들짝 놀랐는데, 이러다 그녀가 거리를 두면 어쩌나 걱정이 들어서였다. 대학에 입학한 후 줄곧 그녀가 없는 대학생활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난 밴드부 활동도 할 수 없었을 테니까.


기타를 처음 생각한 건 하늘이 구겨져 잔뜩 흐린 3월 2일 이었다. 나는 비로소 대학생이 되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몇 잔의 술을 받아 마시고는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대학생이란 곧 자유인과 같은 말이었는데 비로소의 자유가 힘겨웠을까. 호프집 계단을 부여잡고 부슬비를 맞았다.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괜찮냐는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역시 기타를 사야겠어.' 다짐하며 잠이 들었다.


보통 술자리의 다짐은 다음날이면 흔적을 도통 찾아볼 수가 없다. 숙취는 날아가는 다짐의 '날 잊지 말라.'는 마지막 발악임에 분명하다. 호프집 계단을 부여잡고 했던 다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표를 보며 강의실을 찾아가고, 붐비는 학생식당에서 빈자리를 찾았다. 친해지기 위함이란 명분에 매일 저녁 술자리를 갔다. 틈틈이 예쁜 여자애들을 훔쳐보다 보면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5월이었다. 동아리 신입생 모집이 다 끝난 시즌이었는데, 게시판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포스터를 봤다. 한쪽 모서리의 청테이프 덕에 포스터는 떨어지지 않고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빛바랜 포스터가 마치 깃발처럼 느껴져 살펴보니, 흔하디 흔한 학내 밴드 동아리였다. 공강 시간에 쭈뼛대며 찾아갔을 때, 그녀가 혼자 있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신입부원이고, 베이스를 친다 했다. 배운 적은 없지만 기타를 치고 싶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그럼 네가 써드 기타리스트라고 했다. 기타가 아직 없을 테니 지금 당장 사러 가자고 나를 이끌면서.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우리는 모두 취해있었다. 그녀는 유독 더 취했던 걸까. 거의 다 부른 노래를 끝마치지 않고 털썩 주저앉았다. 마지막 소절을 우리끼리 마저 부르고 술을 더 마시려니 그녀가 물었다. '오늘은 담배 안 피우네?' 그 말에 담배가 동해 밖으로 나왔다. 술김에 호프집 계단에 털썩 앉아 후까시를 잔뜩 잡고 불을 붙이려는데 그녀가 내 옆에 와서 쪼그리고 앉았다. 노래 잘 들었다고, 이미 내 귀는 취했는데 넌 타고난 가수임에 틀림없다는 농담이나 건네려는데 그녀는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짧은 아르페지오 뒤에 일본어가 나왔다. 그녀가 좋아하는 Bump of chicken인가 싶어 잠자코 들었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해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읊조리는 듯한 1절이 끝나고 후렴구로 넘어가는 찰나에 일렉기타 소리와 함께 '온통 내가'라는 단어가 들렸다. 일본어도 못하는데 왜 이 노래를 들려주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넌 네 음악세계를 넓혀야 하니 군대에서 시간 날 때마다 들으라고 답했다. 제목은 'flyby'라고.


그 노래를 다시 들은 건 일병을 달고 나서였다. 온라인이 유일하게 허락된 '싸이버 지식 정보방'은 정말 그 이름에 충실한 곳이었다. 구식 컴퓨터에 게임 따윈 전부 막아 놓았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몇 개 안 되는 답글을 달고 나면 할게 없었다. 그녀는 노래는 잘 듣고 있냐는 글을 남겼다. 잊고 있었던 게 미안해 'flyby'를 찾아들었는데 다시 들어도 후렴구는 '온통 내가-'로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길래 이렇게 들리나 싶어 가사를 찾았다.


ワタイハ ドンナニ離レテモ イツダッテ僕ノ 周回軌道上
와따시와 돈나니 하나레 테모 이쯔닷떼보쿠노 슈카이키도죠
나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언제나 나의 공전궤도 위

アナタハ ドンナニ離レテモ イツダッテ君ノ 周回軌道上
아나타와 돈나니 하나레 테모 이쯔닷떼키미노 슈카이키도죠
너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언제나 너의 공전궤도 위


두 소절이 끝나고 문제의 그 단어가 나왔다.


応答願ウ
오토 네가우
응답 바람


그녀와 보냈던 일학년의 시간들이 떠올라 멍하니 있었다.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이 노래를 왜 들려줬을까 문득 궁금해졌을 때는 이어폰으로 두 번째의 '온통 내가'가 흘러나올 때였다. 아차 싶어 싸지방을 나섰다.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고 네 번호를 눌렀다. 이제는 응답을 해야하는데, 너무 늦지 않았기를. 네가 받길 기다리면서 '온통 내가'를 흥얼거렸다.


応答願ウ ズット 応答願ウ
오토 네가우 즛토 오토 네가우
응답 바람 계속 응답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