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는 낭만이었다

특히 밤의 빠리는

by 김고양


빠리의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처음엔 샤를 드골 공항만 그러려니 생각했다. 유러피언에겐 비행기가 너무 익숙해 공항이 동네 터미널급이 아닐까 하고-. 공항철도를 탔을 때도 빠리 지하철이 지저분하다 지저분하다 익히 듣고 갔으니 버틸 만했다. 빠리로 들어가는 차창 밖으로 그래피티만 주구장창 보이는 건 너무 한다 싶었지만, 이내 빠리가 '낭만'과 '예술'의 도시라는 걸 떠올리고는 스스로 납득해버렸다. 어쨌든 빠리에 입성하기도 전에 내 여행의 정취를 깨뜨리긴 싫었으니까.


하지만 노숙하는 흑형들- 어림잡아 20명은 되었고, 그중엔 흑어린이도 있었다! - 을 보게 되었을 때, 여행이고 나발이고 나는 빠리의 첫인상이 정말 별로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흑형들을 (그리고 흑 어린이들을) 마주친 건 산책을 나섰을 때였다. 20구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매우 가까웠기에 역시 글로벌 체인 호텔의 탁월한 입지 선정이라며 감탄했었다. (그리고 이 호텔을 적당한 가격에 예약한 나 자신에 감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빠리의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 없으니, 슬슬 동네 마실을 나섰다. 운이 좋으면 야시장이나 먹자골목을 찾을 수 있으리라. 골목을 하나 지나자마자 고가도로가 나왔고, 그 밑에는 다수의 흑형들과 형들의 텐트가 있었다.


고가도로를 겨우 지나쳐 ('겨우'인 이유는 흑형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눈을 깔고 최대한 숨을 죽인 탓이다.), 도로 턱에 걸터앉아 담배를 한 개비 태워 물었다. 자유! 평등! 박애! 사실 프랑스는 나에겐 환상 속의 공간이었다. 혁명의 국가. 이성과 상식이 지배하지만 낭만을 잃지 않은 곳. 유럽의 심장부가 프랑스이며, 그 수도 빠리가 아닌가! 자유 다음에 평등이 존재하는 이곳에 (심지어 그다음은 박애다.) 노숙하는 흑형의 무리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노숙하는 흑린이라니! (역시 싼 호텔이 좋은 곳에 있을 리가 없어 생각했던 게 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미 태운 꽁초의 불을 새 담배로 옮기는 것을 두 번쯤 했을 무렵, 이번 여행을 위해 들었던 '프랑스 문화의 이해' (약간은 창피하지만 내 딴에는 큰 맘먹고 큰 돈 들인 여행이다.) 선생님이 프랑스는 이민자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민자 청소년에 관한 영화도.


그렇게 내 빠리에서의 첫 마실은 담배 세 개비를 태우고 끝이 났다. 빠리의 밤을 거닐기 보다는 호텔 로비 소파에 몸을 파묻고 인터넷을 거닐기로 했다. 사람들은 각자 다르지만 완전히 다른 건 아닌 것 같다. 여행자 카페인 나와 똑같은 감상을 지닌 사람이 또 있었고, 심지어 내 또래 대학생이었다. 신께 자주 감사를 드리진 않았지만 그땐 분명히 깊고 짧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었다. 로비 반대편 의자에 앉아있던 청순한 동양인이 바로 그녀였으니. 그래 여행은 역시 글로벌 체인 호텔에서 묵어야 한다.


빠리에 설레며 온 여행이었지만 정작 날 설레게 한 그녀였다. 미술을 전공한다는 그녀는 부모님이 말리는 걸 겨우 이겨내고 혼자 여행을 왔더니 빠리의 첫인상이 고작 이거냐며 조잘대었다. 작고 슬림한 그녀는 쉴 새 없이 말을 내뱉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힐끔힐끔 보는데 정신 팔린 나는 정작 그녀가 뭘 말했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녀가 불평할 때, 그녀 기준으로 왼쪽 입꼬리를 올리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귀여웠던 그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기에 그 날밤을 선명히 담았다고 자부하고 있다. 여전히.


10429423_756898351033065_7719541211374647462_n.jpg 무려 그녀가 찍어준 사진이다.


그녀는 한 달짜리 유럽여행이었고 나는 열흘간의 빠리여행이었다. 다행히 여행 첫날 서로 만났고, 그녀의 일정은 다소 유동적이기에 며칠간 함께하기로 하고 피맥을 마무리 지었다. 내일 아침을 기약하고 방에 돌아오니 비로소 심장이 두근대는 게 느껴졌다.


역시 빠리는 낭만의 도시이다. 특히 밤의 빠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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