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더 이상 부끄럽지가 않다.
열아홉 번째 생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 밤새 놀고 첫차를 탔다. 돌아오는 마을버스 창가에서 지난밤을 되뇌이는데 자주 가는 만두가게가 보였다. 간판 불은 꺼져있는데 실내등은 켜져 있었다. 영업개시가 족히 몇 시간은 남았으니 간판 불이 꺼진 건 당연했지만 실내등이 이 새벽에 왜 켜져있을까 싶어 순간 눈을 떼지 못했다. 도둑이라도 들었으면 큰일이다. 비록 체인점 만두가게지만 이 동네에 그만한 만두가게는 또 없었으니까-. 찰나에 별생각을 다 하고 있었는데 만두를 빚고 있는 아저씨가 내 눈에 들어왔다.
밤의 끝자락에서 나는 흥청망청 놀다가 돌아왔는데, 새벽의 초입에서 그는 만두를 빚고 있었다. 돌아본 버스 안에는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들에게선 상쾌한 스킨 냄새가 났다. 내 몸에선 정체모를 퀘퀘한 냄새만 날 뿐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다. 서둘러 방에 들어가 옷가지를 전부 세탁기에 집어넣고 한참이나 샤워를 했다. 그 퀘퀘한 냄새를 흔적도 없이 지우고만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큰일도 아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고, 흥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자연스레 밤새 술을 마셨다. 밤의 끝은 누군가에겐 하루의 시작인 것이 당연하니, 어쩌면 그날은 참말이지 자연스러운 일만 일어났던 날이다. 하지만 청춘의 한 복판에서 나는 겨우 밤새 술을 마신걸 가지고도 가슴 저리게 부끄러워했다.
살다보면 겪는 흔한 일이다. 이제는 그런 별일 아닌 일은 그냥 툭툭 넘기고 충분히도 잘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문제다. 점점 부끄러운걸 모른 채 살아간다. 고작 지금보다 몇 살 더 어렸을 적엔 세상은 부끄러워할 것이 천지였는데 지금은 도통 부끄럽지가 않다. 지나치는 짧은 치마를 힐끔 훔쳐본 게, 할머니에게 버스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던 게, 지하철 부딪힌 어깨를 사과하지 못했던 게 부끄러웠던 날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게 지금은 부끄럽지가 않다. 짧은 치마엔 '당연히' 눈이 가고, 나도 피곤하니 '마땅히' 버스 자리에 앉아야 하며, 북적이는 사람에 '어쩌다 보니' 어깨를 부딪히게 된 거라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음을 부끄러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