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을 팔았던 세명의 소년
붕어빵 노점이 늘어나는 걸 보니 이제 겨울이다. 과일에도 제철이 있듯이 붕어는 겨울이 제철이다. 혼자라면 천 원어치도 좋다. 사치롭고자 하면 이천 원어치를. 주섬주섬 돈을 챙기는 그 짧은 시간에도 손은 추워 곱기 마련인데, 온기가 가득한 종이봉투를 받노라면 그래 차라리 행복하다.
수능이 끝난 겨울에 우리는 붕어빵을 팔았다. 청춘은 응당 붕어빵 장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어쩌면 인생에 처음 자유를 맞닥뜨린 청춘인데 고작 붕어빵이라니.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훨씬 생산적인걸 할 테다. 여자애들 꽁무니 따라다니기 같은.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한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였다. 우리는 여고 앞을 골랐다. 어쩌면 붕어도 팔고 나도 팔 수 있으리라. 개업에 간판이 빠지면 안 되지. 눈에 잘 띄는 색으로. 비닐 천막에 세명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있자니, 글쎄 벌써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것처럼, 나도 세상에 첫걸음을 내디딘 거라 생각했다.(물론 나도 그땐 꿈이 있었다.)
학교 앞은 유동인구가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내 잘못된 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면 정말로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았다. 점심 나절에 장사를 시작했지만 저녁 무렵까진 손님이 도통 없었다. 물론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에도 손님은 어쩌다 들렀지만, 우리 모두가 익히 알듯 0과 1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붕어는 더러는 타기도 하고, 설익기도 했다. 탄 것은 우리가 먹었고 설익은 것도 우리가 먹었다. 황금색으로 쫙 빠진 붕어도 있었는데, 사가는 손님이 얼마 없었기에 곧 눅눅해졌다. 눅눅해진 것도 우리가 먹었으니, 대부분의 붕어는 사실 우리가 먹었다. 오뎅도 같이 팔았는데, (그땐 우리말을 사랑하는 학생이었으니 우린 어묵이라 불렀다.) 문제는 우리 셋 모두 국물을 낼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오뎅국물이야 무와 오뎅 그리고 다시다를 넣으면 뚝딱일 거라고 얕잡아봤었는데,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손으로 만들어낸 국물은 그래 전쟁통에 피난민들도 먹지 않을만한 맛이었다. 내 친구는 그 이유를 이웃 화장실 세면대에서 뜬 물로 끓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말 그 때문이었을까-.
손님이 너무 없었고, 타거나 설익은 혹은 눅눅한 붕어빵을 먹어치우는건 곧 질리게 되었다. 전등도 없어 깜깜한 포차 안에서 우리는 팥 대신 어묵을 넣은 붕어빵을 구워 먹으며 껄껄 웃었다. 황소바람에 옹기종기 모여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고 싶은 것들, 집안 돌아가는 이야기들, 두렵고도 설레던 대학 이야기 같은 것들을. 그때 불었던 겨울바람에 다 날려간 것일까. 그때의 마음과 기분을 지금은 도통 느낄 수가 없다.
장사가 좀 된 날은 그날 저녁으로 밥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점심 저녁으로 붕어만 먹었던 우리에게, 셋이 한 그릇씩 비웠던 순대국은 참말이지 맛있었다. 손님이 그 정도로 없었는데, 덕분에 우리는 한 명씩 번갈아 가며 근처 피아노 학원을 다녔었다. 물론 붕어빵 장사를 한 날이 채 한 달 남짓이 안되었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순 없었지만, 내 친구는 그날을 떠올리며 '열여덟 살 달아오르는 낭만의 끈을 너와 나는 놓지 않았노라' 했다. 잘 몰랐었는데 포장에 소질이 있는 녀석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갈길을 떠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한 명은 연락이 닿지 않는다. 홍대에서 밴드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 그 낭만을 너는 아직 놓지 않았으니 연락이 뭐가 중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