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 그리고 타지마할
인도는 연착의 나라다. 아그라로 떠나는 열차 또한 연착이었다. 돈 없는 여행자 신분에 일정이 밀리면 안 되니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언짢아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이내 멋쩍어졌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소낙비가 내렸다. 급히 우비를 사 썼는데 얼마간은 젖을 수밖에 없었다. 궁시렁 궁시렁 욕을 해대며 기차에 올랐는데 건너편 좌석에 백인 여행객 3명이 보였다. 우비도 없이 비를 홀딱 다 맞고서는 기차 창문 창살에 운동화 끈을 매달고 있었다. 아마도 빨리 말리기 위함이리라. 해맑고 밝은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간의 부러움과 얼마간의 질투심과 얼마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 몰래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 사진을 찾을 수 없는 게 애석하다. (백인 형들이 짱 잘생김 + 차창에 매단 신발이 낭만적 = 화보)
아그라엔 오직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들렀다. 타지마할은 인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며, 어떤 이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타지마할을 꼽기도 한다. 타지마할은 아름다웠다. 순백의 색도, 극도의 대칭도, 섬세한 문양도. 무덤이 아니라 궁전이어야만 할 것 같은 기품과 웅장함이 있었다. 하지만 단지 건축물의 위대함만으로 불가사의라 칭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죽은 아내를 기리며 아름다운 무덤을 건설하고, 평생 그녀를 그리워했던 황제. 아들에 의해 폐위당해 요새 탑에 갇혀 창문 너머 보이는 타지마할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끝내 죽어서 그녀의 옆에 묻혔던 그 황제의 이야기를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칭하는 모양이다. 그래 어쩌면 지고지순한 사랑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거겠지.
덧신을 신고 타지마할을 둘러보면서 한참이나 곱씹었지만, 그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변치 않는 사랑을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며, 제국의 황제가 웅장한 무덤을 만든 것이 뭐가 그리 경이롭단 말인가. 그날 밤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한국 여행자들과 술을 마시는데 난 술에 취해 타지마할 이야기를 했다. 저게 무슨 불가사의냐고 사랑은 응당 변치 않는 것인데, 너희 같은 비겁자들에게나 타지마할이 불가사의지 나에겐 영원한 사랑이란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술 취해 떠들어댔다. 아 그때의 나에겐 참 당연한 것이었는데-
타지마할 앞 기념품 가게에서, 누구나 그러하듯 조악한 기념품 몇 가지를 잔뜩 바가지 쓰고서 구매했다. 이건 내가 어리숙하거나 멍청해서 비싸게 산 것이 아니다. 나도 물론 흥정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비싸다는 나의 말에 기념품점 직원은 말없이 타지마할을 가리켰다. 그가 이건 타지마할과 같은 대리석이라고 그는 주장하는 순간 기념품들의 조악함이 낭만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조그만 코끼리 돌 인형들과 가네샤가 조각된 돌 필통을 샀다. 사실 돌로 깎은 체스 세트가 너무 사고 싶었지만, 그건 정말 너무나도 비싼 값을 불러서 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코끼리와 연필꽂이가 쌌던 건 절대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