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초입에서 패러글라이딩을
또다시 얼마간은 버스를 타서 우리는 히말라야의 초입에 도착했다. 땅은 세상을 달리고, 산은 잠시 머물 뿐이니 '여기서부터는 히말라야요'하고 굳이 나누는 것은 우스운 일이리라. 그래도 나는 여기가 히말라야의 초입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그 이유는 따로 포스팅을 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사실 저 글을 쓰기 위해서 난 이 여행기를 시작했다. 술에 취해 하루를 꼬박 자고 일어났더니 친구들이 돌아와 있었다. 주변 동네가 참으로 걷기 좋았다고 했지만 하루는 꼬박 그에게 바치고 싶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우리의 다음 일정은 무려 패러글라이딩이었다. 애초에 예정된 일정은 아니었다. 저 멀리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말미잘이 강력 주장한 일정이었다. 요금은 생각보다 비쌌고, 우리는 그만큼의 현금이 없었다. 말미잘은 자기가 뉴델리에 있는 인도인에게 돈을 송금받을 테니 나중에 돌려달라는 제안을 했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 게 당연하니 우리는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프차를 타고 한참을 산 위로 올라가서 나무가 적고 달리기 쉬운 장소에 낙하산을 늘어놓는다. 안전 장비를 차고 (딱히 안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숙련된 조교의 구령에 뜀박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늘을 거닐게 된다. 처음엔 시야를 한가득 채운 하늘에 놀랐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왔지만 그것도 잠시다. 시산이 아래로 내려가면 까마득한 땅이 보이고 슬며시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안장 대신 허벅지를 동여맨 벨트에 의지했기 때문에 민망한 부분이 아파오는 건 덤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벅참도 추락의 두려움도 익숙해졌는데, 그때 비로소 경치를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내 등 뒤에 부비부비 하듯 딱 붙어서 낙하산을 조종하는 숙련된 조교 아저씨만 없었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사실 그가 가끔 말할 때 그의 입김이 내 귓볼을 간지럽혔던 것 같기도 하다.
삼십 분이 지나고 땅에 발을 딛었다. 이제 뉴델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침대차에서 몸을 싣고 버스는 밤을 헤엄쳤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하늘을 날았던 꿈을 꿨던 것 같다.
우리 넷이 함께한 여행은 거기까지였다. 말미잘과 그의 친구는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이미 일주일을 무단결석하고 우리와 함께한 것이었다.) 프랑켄과 나는 타지마할을 들러 바라나시까지 가는 여정을 떠날 계획이었지만, 프랑켄의 설사병 발병으로 이틀을 뉴델리에 더 머물러야 했다. 여행할 때 식수가 바뀌어 흔히 겪는 일명 '물갈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하늘을 날았던 후유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