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절여가며 지키고 싶은 게 있어

엄마는 짜게 먹는다

by 김고양

엄마의 요리는 짰다. 날이 더운 남쪽 지방은 대체로 음식이 짜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고향은 그렇게 남쪽도 아니다.(말 그대로 '우리'의 고향이다. 엄마와 나의 고향은 차로 10분 거리니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시골이어서였을까. 김치도 장아찌도 찌개도, 심지어는 고소한 웰빙식품이어야 할 나물마저도 짰다. 어린 시절엔 엄마의 요리가 그렇게 짠 줄 몰랐다. 모두가 그렇게 먹는 줄 알았는데, 대학생이 되어서 비로소 서울 밥을 먹어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서울 밥은 보통은 싱겁고 대개는 달았다.


서울살이를 시작한 뒤로는 '무주택 세대주'로 살아가고 있으니 엄마의 밥을 먹을 일이 많지 않다. 일 년에 몇 번 정도 내려가서 먹을 뿐인데, 그때마다 짜서 슬프도록 놀라곤 한다. 내가 '서울 밥'에 익숙해진 건지 늙어가는 엄마의 요리가 더 짜진 건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느새 나와 그녀의 거리가 이렇게나 멀어진 것만 같아 짠 입을 쩝쩝 다신다. 음식이 짠 건 엄마의 건강에 좋지 않고 거리가 먼 건 우리를 슬프게 하니, 엄마에게 싱겁게 먹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보통 환하게 웃으며 '싱겁게 먹으야는디, 싱거우면 넘어가들 않네' 답하는데, 내 속도 모른다고 탓하기엔 엄마는 너무 해맑아서 나도 따라 웃을 뿐이다.


지난번 고향에서 올라오는 내 손에 엄마는 스팸을 몇 개 쥐어줬다. 누가 선물로 준 선물세트에서 스팸만 빼놓은 거란다. 고작 얼마 하지도 않는 햄인데 그냥 엄마가 먹으라고 하고 돌아서려는데, 엄마는 내가 거절할 수 없는 말을 덧붙였다. 햄은 네가 좋아하는 거니까 네가 가져가서 먹으라고. 햄 부쳐서 밥을 차려줘야는데 그건 못하니까 가져가라고. 아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이러면 거절할 수가 없다. 불공정한 게임이다.


어제는 엄마가 준 스팸을 땄다. 노릇하게 구운 햄은 밥과 함께 먹어도 짰다. 아마도 예전에 저장 기간을 늘리려고 스팸을 짜게 만든 게 아직까지 이어진 것일 테지. 소금에 절이면 상하지 않는 법이니까. 다소 향과 질감이 변하긴 하지만 어디 그게 문제인가. 상하지 않는 걸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이유는 남아 있을 것이다.


엄마의 요리는 짜다. 그래, 어쩌면 엄마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짜게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소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완전히 상하게 하기는 싫어서, 배추를 절이듯이 삶을 절여가며 지키고 싶은 게 있어 그런 건 아닐까. 어릴 적의 꿈을 잃기가 싫어서. 청춘의 애틋함을 간직하고 싶어서. 꼬물거리는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 그때의 그 벅찬 가슴을 상하게 하기는 싫어서. 그래 어쩌면 그게 싫어서 엄마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짜게 먹는 것일 게다. 내일은 엄마에게 전화나 한통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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