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청춘은 아직도 비어있다

이 땅의 청춘이 슬퍼라

by 김고양

엄마가 농업대학에 지원했다. 그런 대학이 있어나 기억을 헤집어 보지는 말도록 하자. 그저 시골 농업 기술 센터에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구청에서 실시하는 문학학교와 비슷한 뭐 그런 프로그램의 일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지원 소식을 전하는 그 목소리마저도 들떠있는걸 보니 그놈의 대학이 뭐길래 고작 대학이라는 단어조차 엄마에겐 벅차오르는가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는 일을 해야 했다. 농사일을 거들다가는 돈을 벌러 상경했다. 열일곱. 어른인 척하자면 충분히 흉내 낼 수 있는 동시에 꼭 그만큼은 어리고 여렸던 나이에-. 난생처음 가는 서울에서 배운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걱정이 앞섰지만, 그게 큰 일은 아니었다. 서울엔 엄마처럼 시골에서 돈 벌러 올라온 촌 소녀들 천지였으니까. 그래 나는 본 적도 없는 세상이지만, 그땐 그런 시절이었다.


출근길에는 교복 입은 여학생을 마주쳐야 했다. 남색 교복에 갖춰든 책가방을 보면서 거친 손을 숨겨야 했을 것이다. 중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 뭘 배우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뭐든지 배우고 싶었을 것이다. 가지 못한 길엔 미련이 남는 법이니까. 그래 순하기만 한 내 엄마도 가끔은 부모를 원망하기도 했을까-.


엄마는 야학에 등록했다. 장지동에 있던 한림학교인데, 엄마는 아직도 그 교가를 외우고 있다. 알파벳도 배우고 운동회도 했다.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고 물으면, 엄마에겐 물을 것도 없이 그때를 꼽는다. 570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그때를. 낮엔 돈을 벌어 집에 보내고, 명절에는 동생들 옷을 사들고 완행열차를 탔으며, 밤에는 배울 수 있었던 그때를. 아쉽게도 '그때'는 오래가지 못했다. 가발공장에서 봉제공장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저녁시간이 나지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 교실을 또 떠났다. 고작 일 년이었다. 일 년.


그러니까 나는, 엄마 세대는 그렇게 배우고 싶었어도 배울 수가 없었던 세대임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더 '빡세게' 굴러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슬프다는 거다.

청춘은 사랑과 꿈으로 가득 차야하는데! 청춘이 시리도록 사랑을 하고, 청춘을 다 바쳐 꿈을 꾸는 것. 오직 그것만이 이 땅의 청춘이 해야 하는 것인데-. 예나 지금이나 그렇지 못한 세상이,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청춘들이 슬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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