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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마흔을 생각하다.

10년 뒤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쓰는 편지

by 김과영



제 영웅은 항상 10년 후의 저였습니다.
저는 결코 제 영웅이 될 수 없을 겁니다.

매튜 맥커너히, 배우



28살의 나에게


안녕, 나야. 27살에도 이런 편지를 썼던 것 같아. 한 번 읽어볼게.


37살의 나는 예쁜 와이프와 결혼해 애가 셋이래. 선생님이 된 지 7년 차고. 육아 휴직도 3번이나 썼대. 첫 아이가 내후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야. 방과 후 학교를 하며 일본어나 한문, 글쓰기를 가르친대. JLPT는 1급이래. 한국과 일본의 역사 재인식에 기여하는 일도 하고 있대.


아 참, 아빠는 종교를 창시하셨어. 아빠의 염원이셨지. 37살의 나에 따르면, 나는 세 권의 책을 냈다고 하네. 하나는 수필, 하나는 시, 하나는 교육에 관한 책이야. 스테디셀러가 되었고, 강연도 가끔 나간대.


어, 여기 더 중요한 말이 쓰여있어.


「가끔 사람들이 물어, 광혁 씨는 특별한 교사이지 않냐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왜냐면 모두가 특별하거든.」


그래. 여기까지는 조금 진부한 면이 있지. 인정해. 이어서 읽어보자고.


「나는 그저 나의 길을 찾았고, 나의 길을 열심히 걸었어. 묵묵히, 남들이 뭐라고 하든, 뭐라고 할 거라고 생각을 해도, 부끄러움을 참았어. 그게 나를 있게 한 거야. 그게 나를 선명하게 만든 거야. 그러니까 좀 더 선명해도 괜찮아. 나는 10년 뒤의 너야. 나를 믿고, 내 쪽으로 걸어와 줄래? 난 여기 있을 거니까. 너에게 믿음이 되어줄 거니까.」


맙소사, 상상해서 쓴 편지가 지금 나에게 진짜로 도움이 될 줄은. 솔직히 다시 읽으면서 감동받았어. 뇌의 어떤 부분을 전극으로 자극한 기분이야. 자기 자신에게 위로받을 수도 있는 거구나.


언제나 계속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을까. 차곡차곡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하나하나를 주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나는 실용적인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수필을 쓴다. 개인적인 생각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다. 공통분모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읽으러 올 수 있을까? 나와 독자를 엮을 방법은 무엇일까.


내 편지가 지금 너의 궁금증을 직접 해결해주진 못할 거야. 어찌 됐든 10년 뒤는 와있어. 삼십 대라기보다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지. 어때, 그때 상상했던 37살의 모습과 거리가 좁혀진 것 같아? 나이 빼고 말이야.

인터스텔라에서 주연을 맡았던 ‘매튜 맥커너히’는 2014년 오스카상 수상소감에서 이렇게 말했어.


“15살 때였는데”

“제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분이 저에게 다가와, 네 영웅은 누구냐고 묻더군요” “생각할 시간 몇 주만 달라고 했죠”

“ 2주 후 그분이 다시 나타나 저에게 또 묻더군요”

“네 영웅은 누구냐고”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10년 후의 제 모습이요”


10년 뒤, 그분은 맥커너히에게 다시 찾아와 물었다고 해.


“너는 네 영웅이 됐느냐?”


맥커너히는 답했지. “저는 아직 택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분은 “왜”냐고 의아해했어.


“제 영웅은 서른다섯 살의 저니까요”


“그렇게 매일 매주 매월 그리고 매년 제 인생에 있어서 제 영웅은 항상 10년 후의 저였습니다”


“저는 결코 제 영웅이 될 수 없을 겁니다”


맥커너히는 끝없이 발전하기 위해 자신의 10년 후를 영웅 삼아 그림자처럼 뒤쫓았어. 지칠 줄 모르는 완성의 추구가 오스카상을 받은 동력이었지.


감동적인 얘기 마음에 새겼지? 자 이제, 그럼 내 얘기를 해볼게. 나는 38살에 책을 한 권 더 냈어. 여기까지는 어렵지 않았어. 너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출판사를 세우지. 그 출판사는 동료 교사나 너가 양성한 학생들의 꿈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너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함께 성장하기로 마음먹었어.


너는 아빠가 창시한 종교를 열심히 믿고 있어. 아빠가 언제나 주지해왔던 사실이 하나 있지. 우리는 모두 조상 덕분에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 신을 믿을 거라면 조상신을 믿으라고 하셨지. 그래서 열심히 차례 지낼 때마다 본가를 들락거리고 있어. 물론, 이건 내가 종교에 심취해서는 아니야. 그저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이지.


10년 뒤 모습만 알려주면 심심하니까, 28살인 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건지도 조금만 스포해 줄게. 너는 학교를 3학년으로 복학하지. 갑작스러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개강이 연기됐어. 괜찮아. 그 덕분에 너는 얻는 게 많으니까. 뭘 얻는지는 비밀이야. 너의 걱정과는 달리, 너는 복학해서도 후배들과 거리낌 없이 잘 융화될 거야. 장담하지.


꿈에 그리던 북페어에도 나가게 될 거야. 너는 자비로 돈을 번 다음, 내 책을 잔뜩 사서 독립서점을 투어할 거야. 간절히 문을 두드릴 거야. 책을 입고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는 거지. 너는 여기서 내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그 과정에서 너는 주변 선배 작가들의 도움도 많이 받을 거고. 그에 대한 감사 표시는 최선을 다하기 바래.


그리고 결정적으로 너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올해의 핫이슈,【수필가 광혁 씨의 일일】 프로젝트는 대박이 터져. 순식간에 화제의 인물이 되어 집중 조명을 받게 될 거야. 압박감이 심하겠지만, 잘 버텨 내기를 바래. 그리고 감사하길 바래. 네 덕분이 아니라, 너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 덕분이니까.


이만 줄인다.


너를 가장 사랑하는 네가.
















「스물여덟, 마흔을 생각하다.」

10년 뒤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쓰는 편지 20.02.13.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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