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의 미학
유시민의 직업은 오랫동안 글 쓰는 사람이었다. 스물여섯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30대 중반 <한겨레> 독일 통신원이었다. 마흔 무렵에는 여러 해 동안 신문 칼럼을 썼다. 그는 산문 중에서도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에세이'를 쓴다. 분야는 역사, 문화, 정치, 경제 등을 아우른다.
30년 전부터 그는 '글 잘 쓰는 비결이 있는지, 어떻게 해서 잘 쓰게 되었는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 대해 유시민은 '살다 보니 어쩌다 보니' 자꾸 글을 썼고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을 뿐, 이라 말했다.
글 잘 쓰는 법을 물었는데 '어쩌다' 라니? 힘 빠지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30년 세월 동안 글 쓰는 사람이었고, 잘 쓰고 싶어 애썼던 사람으로서 답을 하고자 책을 지었다고 한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논리적 글쓰기 일반론이다. 중·고등학생의 수행평가, 대입 논술, 대학생 리포트, 기업 입사 시험의 인문학 논술, 보도자료, 논문, 판결문 등 논리글 잘 쓰는 법을 다뤘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는 논리적인 글도 잘 쓰면 예술 근처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논리의 아름다움, 논증의 미학을 보여주는 글을 만나면 그는 이렇게 외친다.
'이건 예술이야!'
그에게는 논증의 예술성을 구현하기 위해 꼭 지켜야 하는 규칙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평소 생각하고 말하고 판단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첫 번째,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독일 학생 둘이 논쟁을 시작했다.
"미친 것!"
A가 혼잣말로 욕을 했다. 그러자 B가 물었다.
"뭐가?"
"저 피어싱 말이야"
"피어싱이 뭐 어쨌다고?"
"열 개나 달고 다닐 돈으로 아프리카 어린이들 학교 보내는 데 후원이나 하면 좋잖아!"
"그럼 귀걸이 한 쌍은 어때?"
"그거야 뭐, 괜찮지"
"그건 왜 괜찮은데? 그 귀걸이 값은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서 기부하면 안 되나?"
"안 될 건 없지만, 귀걸이 하나 하는 거야 이상할 게 없잖아"
"귀걸이 한 개는 정상인데 피어싱 열 개는 비정상이라고? 정상적 장신구와 비정상적 장신구를 나누는 기준이 뭐야?"
A의 패배였다. A는 욕설의 타당성을 논증하지 못했다. '미친 피어싱!' 이것은 취향 고백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싫다'고 말했으면 취향 차이로 마무리됐을 것이다. 그런데 A는 피어싱 하는 데 쓴 돈을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기부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타인의 행위에 대해 가치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주장을 논증할 책임이 생긴다.
글을 쓸 때도 단순한 취향 고백과 논증해야 할 주장을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이것이 논증의 미학을 구현하는 첫 번째 규칙이다.
두 번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사실과 주장은 다르다. 사실은 그저 기술하면 되지만, 어떤 주장을 할 때는 반드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논증해야 옳은 주장이 될 수 있다. 주장만 하면 바보가 된다.
수학에는 '공리'라는 것이 있다. 증명하지 않고도 참이라고 인정하는 명제가 공리다. 글을 쓸 때는 사실을 수학의 공리처럼 대해야 한다.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장은 반드시 논증해야 한다.
'나는 장동건을 대한민국 최고 미남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주장이다. 논증해야 한다. 먼저 미남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리고 장동건의 얼굴이 다른 누구보다 기준에 들어맞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럴 경우 다른 사람은 동의할 수도 있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가 애초에 아무런 논증도 하지 않은 채 장동건이 최고 미남이라고 주장만 했다면 어땠을까? 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할 수 있을 뿐, 누구도 반박할 수가 없다. 논증하지 않은 주장은 반박할 수 없고, 그런 주장은 주장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세 번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글을 쓸 때는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 삼천포로 빠지면 안 된다. 관련 없는 것을 끌어들이지 않아야 한다.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과 끝을 잇는 직선적 논리를 펼쳐야 한다. 이것이 논증의 미학을 실현하는 세 번째 규칙이다.
다음은 유시민이 직접 겪은 '유쾌하지 않은' 사례다. 그는 정당 활동을 하던 분들과 크게 다툰 일이 있었다. 중앙당 고위 당직자가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유시민 전 공동대표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습니다. (...) 문제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비서실장이나 비서가 항상 회의 중 밖에 커피숍에 나가 종이 포장해 사 온다는 것입니다. (...)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분들을 보면서 노동자 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입니다.
이 글은 소위 '아메리카노 논쟁'을 일으켰다. '유시민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비서실장한테 커피 심부름을 시킨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성공적인 논증이다. 우리는 인간이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는다. 문명국에서 이것은 공리나 다름없다. 조직의 위계는 인격의 높고 낮음과 관계가 없다. 수평적 개인이 조직 전체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합의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누군가 이 원칙을 유린하면 사람들은 공분을 느낀다.
유시민은 당직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했다.
'철저한 민주주의자라면 자기가 마실 커피를 손수 구하는 게 옳다'
당직자의 글은 마지막 한 문장을 제외하면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없었으면 좋았을 마지막 문장 때문에 글쓴이는 심한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글쓴이는 '논점 일탈의 오류'를 저질렀다. '유시민 공동대표의 권위주의적 생활 태도'라는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끌어들였다. 그 문장 하나가 글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는 글의 맥락에서 벗어나 취향 고백을 한 것이다.
이런 불행을 피하려면 냉정한 태도로 글을 써야 한다. 말과 글로 논증하고 토론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그 규칙을 지키면서 글을 쓰는 것은 훨씬 어렵다. 이해는 생각만 해도 할 수 있지만 실천은 삶으로 몸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더 많다. 글쓰기도 그런 것이다.
다음 이야기
그에게 글쓰기는 '기능'이다. 그에게 재주나 소질은 글 쓰는 능력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학습과 훈련이다. 누구든 노력하면 할 수 있다.
「유시민의 글쓰기 "그대도 할 수 있습니다"」 논증의 미학 20.02.17.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