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KBS
생각보다 어려웠다. 블로그에서 본 건 피피티 띄워놓고 다 같이 푸는 광경이었다. 오늘은 따로따로 앉아서 혼자 풀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개별적으로 테스트하고 개별적으로 귀가조치한다고. 그 탓에 힌트가 전혀 없었다. 핸드폰도 볼 수 없었다.
“비 오는데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
아빠의 예상과 달리 비는 오지 않았다. 대신 눈이 비 오듯 쏟아졌다. 까딱하면, 폭설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듯했다. 내가 지금 스노 글로브 안에 들어 있는 거고 누군가 그걸 세차게 흔든 건가, 싶을 정도로 눈바람이 쳤다. 눈은 거의 수평으로 내렸다. 수평이니까 ‘내렸다’가 아니라 ‘이동했다’일까? 눈은 하늘이 아니라 앞에서부터, 옆에서부터 혹은 뒤에서부터 이동해왔다.
나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우리말 겨루기〕 예심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빠는 극구 만류했다.
“어차피 떨어져. 뭐하러 힘들게 거기까지 가”
“아무나 붙는 게 아니야. 몇 년 공부해도 떨어지는 사람이 수두룩해”
“아빤 날 너무 과소평가해”
“내가 상위 5%는 될걸?”
“재수하면서 쌓은 문법 지식, 대학 다니면서 강의 들은 거, 글 쓰면서 맞춤법 공부한 짬이 있어”
나는 갖은 허세를 부렸다. 말리는 아빠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추웠다. 강렬한 눈이 내렸지만, 자주 볼 수 없던 백설의 풍경이었다. 차가운 온도마저 아름다웠다. 신길역에 내려 다리를 건넜다. 60초부터 카운트다운하는 길고 친절한 횡단보도를 지나 KBS에 도착했다. 본관으로부터 주차장을 빙 돌아 신관으로 갔다.
예심 예정 시각인 2시 전이었는데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 계단 쇠기둥에 A4용지가 붙어있었다.
「우리말 겨루기 예심은 신관 로비에서 진행됩니다.」
옆에 서 있던 아저씨도 이걸 읽으셨는데, 나와 방향을 같이 했다. 동료다. 나는 그동안 봐왔던 면접을 상기했다. 드림클래스, 알바, 정시 면접…. 언제나 함께 면접을 보는 사람들은 동료였다. 어색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때우고, 중요한 정보를 나누고 갈무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 예심장에서도 서로 동료가 되는 분위기가 있을까. 나는 로비로 들어섰다. 보안직원이 행선지를 물었다.
“어디 가세요?”
“우리말 겨루기 예심이요”
“이쪽으로 와서 온도 잴게요”
손바닥이며 귓구멍에 비접촉식 체온계를 가까이 댔다. 직원은 뭔가 잘못됐다는 표정을 짓고 갸우뚱했다.
“바깥이 추워서 그런지 제대로 안 재지네”
곤란해하는 직원에게 선임이 다가왔다. 그분이 자세를 고쳐 잡자 제대로 측정됐다. 상의 넥라인에 가까운 목 아래 부위는 일상 체온에 가까웠나 보다. 안쪽에 카페가 있었다. 은근 사람이 있었다. 더 안쪽에는 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우리말 겨루기가 전국구네’
열기가 뜨거웠다. 어르신이 대부분이었지만, 또래나 내 바로 위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소개란과 동기란이 가장 컸다. 그밖에 예심 횟수나 출연 횟수를 물었다. 특기나 장기 칸도 있어서 성대모사와 춤을 출 줄 안다고 썼다.
다음으로 십자말풀이를 풀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블로그에서 본 건 피피티 띄워놓고 다 같이 푸는 광경이었다. 오늘은 따로따로 앉아서 혼자 풀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개별적으로 테스트하고 개별적으로 귀가조치한다고. 그 탓에 힌트가 전혀 없었다. 핸드폰도 볼 수 없었다.
“사진 찍으시면 안 돼요!”
기념으로 남기려고 했는데 아쉬웠다. 기억나는 문제 몇 가지를 써보면 다음과 같다.
‘됨됨이’
됨됨이는 사람의 품성을 말할 뿐 아니라 사물의 모양새나 특성을 뜻하기도 한단다. 처음 알았다. 정황을 봐서 찍었는데 맞았다.
(속담) 얕은수로 남을 속이려 한다는 말.
‘눈 가리고 아웅’
한자어 명사. 어떤 일이 진행되는 정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시) 세무 조사의 「이것」이 높다
‘수위’
맡은 일을 처음 공식적으로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예시) 신인 투수는 첫 경기에서 홈런 두 개를 맞는 등 호된 「이것」을 치렀다.
‘신고식’이다.
맞았다고 생각했던 문제 가운데 집에 와서 사전을 찾아보니 틀린 것도 있었다. 내가 틀린 문제의 답은 ‘두말’과 ‘두서’, ‘건지다’ 였다.
올바른 띄어쓰기를 묻는 문제도 있었다. 예시로 띄어쓰기를 전혀 안 한 문장을 주고, 올바르게 띄어 옮겨 적으라는 식이었다. 모르는 문제를 골똘히 고민했다. 죽어도 안 풀리는 문제 중, 한 문제는 찍고 나머지 문제는 비워두었다.
일상생활과 유리된 부분도 없지 않겠지만, 어떤 어휘들은 글쓰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말의 뜻은 보통 암묵적으로 알고 쓴다. 정확히 알고 쓰는 것이 아니다. 사전적인 정의를 보고 익히는 것은 언어 감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관계자분이 허공에 외쳤다.
“작성 끝나신 분은 꼭 면접 보고 가세요”
면접을 안 보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나는 답안 작성을 끝내고 손을 들었다.
“선생님!” “선생님! 저 끝났어요”
면접관은 작가의 포스가 났다. 자기소개서를 한 번 보고 나를 쳐다보셨다.
“오 광주에서 오셨어요?”
“학교가 광주입니다”
“집은 서울이네요?”
“네 본가가 서울입니다”
“오 교육대학생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어쩌다 광주까지”
“그렇게 됐습니다”
“아하아~”
“오 수필?” “책을 출간했어요?”
“부끄럽네요”
“수필까지 쓰시고...”
“동기는 아버지가 권유를 하셔서?”
“아뇨 그 반대입니다” “아버지가 퀴즈 프로그램 마니아신데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셔서 제가 대신 지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왜 안 나오세요?”
“TV 나오기 부끄럽다고 그러세요”
“그렇게 퀴즈를 잘하시는 분인데… 부끄럽다고 하시니 제가 용기를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를 위해서 여기까지 오신 거네요”
“그렇습니다”
잠시 쉬고,
“저희가 촬영은 화요일에 하는데 어떻게 시간은 괜찮으세요?” “확인증은 써드려요”
“언제 방송을 하게 되나요?”
“결과 나오시면 5월이나 연말에 찍으실 수도 있어요”
“생각보다 늦네요? 그러면 저는 편한 거는 개강 전인데, 수업 있을 때라도 불러주시면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면접이 끝났다. 아버지 당신은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셨다. 대기업에 취직했고, 자기 자신의 사업을 하기 위해 퇴사하셨다. 연이은 홀로서기 속에서 고난을 겪었고, 아버지는 사업을 접으셨다. 아버지는 성공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 방송에 나갈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지 않다.
아빠는 절대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기 위해 방송에 나가야 한다. 그 말을 백 마디 하기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었다.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존경심을.
아들의 우리말 겨루기
눈 오는 날의 KBS 20.02.16.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