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가사 노동
언제까지고 차례상 차리는 것을 여자만 할 수 없다. 나는 옆에서 조수 역할을 수행했다. 전은 어떻게 부치는지, 떡국은 어떻게 끓이는지 보고 직접 해보면서 익혔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즐기지 않을뿐더러, 식도락 여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근래 들어 부쩍 식탐이 생기고, 인스타에 올릴 만한 식당에 가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대학에 다시 입학하면서부터다. 신입생이 되었으니, 예전에 못 해봤던 일을 하고 싶은 보상심리가 꿈틀거렸다.
‘나는 예전과 달리 재밌는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예전과 달리 하루하루 열심히 계획하고 열심히 소비하며 살고 있다’
‘나는 예전과 다르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는 요리에 빠졌다. 요리하는 내가 SEXY했다. 자취생은 공감할 것이다. 1인분 만들기가 곤란하다. 마트에서도 1인분 식재료는 잘 팔지 않는다. 꼭 어떤 요리를 만들고 나면, 재료가 남았다. 냉장고에 재고처럼 쌓였다.
미역국을 끓일 때도 곤란했다. 학교 다닐 때 집에서 먹는 경우는 아침 정도다. 학기 초반에는 챙겨 먹다가, 중반부터 수업 10분, 20분 전에 일어나 후다닥 나가기 바쁘다. 미역국은 덩그러니 냉장고 안에서 식어갔다.
나는 먹는 욕심이라기보다 행위 욕심이 있다.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성질머리가 있다. 일본 워홀도 그래서 다녀왔다. 거기서 나는 오코노미야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손님을 위해 요리했기 때문에 내 혀가 즐겁진 않았다. 맛있는 냄새만 잔뜩 맡았다. 일본에서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귀가해서 실력 발휘할 식재료를 넉넉히 사진 못했다.
지금은 한국에 돌아와 복학을 앞두고 있다. 집에서 쉬는 동안 아빠와 함께하는 요리에 맛 들렸다.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사 노동이라고는 1도 모르는 바보였다. 음식에야 아니었을까. 우리를 갱생한 것은 막내 고모다. 이번 아빠 생신 때 한 번, 설날에 한 번 오셨다.
막내 고모가 오시는 날은 대청소하는 날이다. 막내 고모는 집안 더러운 꼴을 가만 보지 못하신다. 바닥 쓸고 닦고, 현관 청소하고, 싱크대부터 가스레인지, 화장실 바닥에서 욕조, 세면대까지. 이불과 요를 밖에 들고 나가 탈탈 털고 나서야 청소가 끝난다. 냉장고 정리는 덤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막내 고모에게 밀착하여 청소하는 법과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청소 좀 하고 살아라. 여기 올 때마다 힘들어 죽겠다”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핑계도 이런 핑계가 없지만, 가사에도 레벨이라는 게 있는 듯하다. 정리도 해본 사람이 더 잘한다고, 안 해 버릇하다 보니 실력이 늘지 않는다. 아빠는 너스레를 떠신다.
“청소를 해도 남는 게 있어”
“숨은 먼지까지 들춰낼 필요는 없잖아”
이 정도면 만족이라는 아빠, 그걸로 만족할 수 없는 가사일 100단 막내 고모, 그리고 과도기의 내가 있었다. 그 뒤로 아빠와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싱크대를 박박 문지르고, 가스레인지에 물 넘친 것과 양념 묻은 것을 닦아냈다. 욕조와 세면대를 광나게 닦는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은 물론이다.
설날 음식 준비도 막내 고모가 도맡아서 준비하셨다. 막내 고모는 아빠보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차례 음식을 하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언제까지고 차례상 차리는 것을 여자만 할 수 없다. 나는 옆에서 조수 역할을 수행했다. 전은 어떻게 부치는지, 떡국은 어떻게 끓이는지 보고 직접 해보면서 익혔다.
아빠는 이제 눈 감고도 찌개를 끓이신다. 매번 백숙, 된장찌개, 김치찌개 다양하게 메뉴를 바꿔가면서 말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실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찌개를 끓이는 국물 베이스를 장조림 국물로 해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다.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거는 팔아도 된다”
“에이 무슨 팔아”
아빠는 겸손하신 편이다. 나 또한 나물류는 물론 장조림이나 멸치국수를 만들고, 물김치도 담을 수 있다. 장족의 발전이라 하겠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겁이 사라졌다.
요리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리하고 나면 내가 ‘이런 요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하다. 정리하는 것은 언제나 요리의 기본이기 때문에 귀찮다.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다. 이리저리 벌려둔 모습에 깜짝 놀란다. 아무리 간단한 요리라도 엄청난 품이 든다. 최선을 다해 만든 반찬거리도 이틀에서 사흘 걸려 사라진다. 어디, 오래 두고 먹을 반찬이 없을까? 우리에겐 그런 반찬이 필요하다.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두 남자의 가사노동 20.02.15. 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