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후생 Feb 27. 2020

펑크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자료를 아무리 찾아도 못 찾을 때가 있다. 오늘이다. 나는 작년 1년 동안 휴학을 했고 올해 복학한다. 공교롭게도 코로나 사태로 개강이 연기됐다. 그 덕에 1년을 조금 넘치게 휴학하고 있다. 휴학한 계기에 관하여 글을 쓰려고 보니, '반올림'이라는 예전 드라마가 생각났다. 반올림은 2000년대 초반에 방영했던 성장드라마다. 시즌이 여러 개인데 어린 시절 내가 보던 것이 1인지 2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결말이나 전체적인 흐름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지만, 뇌리에 아직까지 남는 장면이 있다. 



이은성이 분한 극 중 인물 '서정민'



  배우 이은성이 분한 '서정민'은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다.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하는 범생이. 그런데 똑똑하기만 한 게 아니다. 반골 기질이 있어서 부정의한 것에 대항해 1인 시위를 불사하는 행동력도 갖췄다. 또, 학교 다니며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말하고는, 담임 선생님께 자퇴서를 내는 등 학교를 발칵 뒤집어놓는다. 


  나는 그런 서정민이 '나를 찾는 여행'을 하겠다며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는 장면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야 왜 나를 찾아야 하는지. 왜 나를 찾는 일이 학교에서는 불가능한지 생각조차 못 했다. 나를 찾겠다는 그 원초적 물음. 그 장면을 언급해야만 나의 휴학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제대로 쓸 수 없기에,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한 편 한 편 보면서 재생 바(bar) 속을 샅샅이 뒤졌다. 몇 시간 동안 찾았지만 '그 장면'이 나오질 않았다. 어떤 회차는 보다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십몇 년 전 드라마 거기다 '성장드라마'를 보면서 오열해버렸다.


  '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화두는 흥미로운 주제다. 이 화두는 시대의 마디마다 항상 등장한다. 예전에는 '나를 찾는다'고 하면 인도를 가는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혹은 한비야처럼 지구 밖으로 행군한다든가 하는 배낭여행. 그다음에는 워킹홀리데이 정도일까. 그다음에는 어딘가에서 한 달 살기. 점점 여행의 기간이나 강도가 약해진다. 그리고 공간의 이동도 최소한으로 줄어들었다. 특정한 장소 하나, 무리되지 않을 만큼의 기간을 정해 제대로 살아 보는 것. 더군다나 요즘은 여행 안 가는 사람을 바보로 아는 사람이, 더 바보가 되는 때가 왔다. 이는 SNS에 '보여주기식 여행'을 반성하는 풍조와, 동시에 여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의 '취향'이 여행으로부터 얻는 '교훈'보다 더욱 존중받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변화'는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아를 찾는 것은 그닥 현실적인 생각이 아니며, 오히려 여행은 소확행이나 순간의 즐거움에 가까운 것임을 깨닫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나를 찾는' 여행은 점점 세련된 형태로 바뀌었다. 더 이상 여행은 인생의 일부를 걸어야만 떠날 수 있는 거창한, 청춘의 무언가가 아니다. 이젠 한 달 살기를 '나를 찾겠다'며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나'를 이미 알기에, 내가 무엇을 보고 싶고, 하고 싶고, 어디서 살고 싶은지 알기에 하는 행동이다. 나에게 가능할 어느 다른 모습을 구태여 찾지 않는다. '순간' 원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행하고, '순간' 원할 수 없는 것은 꿈꾸지 않는다. 지금의 나를 두고 다른 나를 찾는 것은 나에 대한 배덕행위다. 모험과 좌절은 행복에 대한 불성실이다.


  나는 2학년 2학기의 종강을 앞두고 휴학을 고려했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서였다. 잘 다니던 대학을 중도에 멈춘다니 '배부른 소리'다. 미래에 어떤 위기가 있을지 모르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짓'이다. 어딘지 익숙한 반대 의견이다. 반대에 대한 반론도 꽤나 익숙하다.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는 직진 코스야말로 위험하다.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을 때, 헤어나오기는 더욱 어렵다. 미래의 안정성을 위해 현재의 행복이나 욕망을 더 이상 유예하지 않겠다. 그런 얘기였다.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에겐 이미 그 생각이 아닌 다른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라는 현실보다, 내가 꿈꾼 가능성이 더 마음에 들었다. 나는 관철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를 찾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언젠가가 지금이 아닐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신 포도를 상상하며 내가 먹을 수 있는 지상의 먹이에 만족하기가 싫어졌다.





















「펑크」 2020.02.26.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