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의 자격
미니멀리스트로 유명한 인물 유루리 마이는 물건 갖는 것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혼반지가 생기자 그녀는 연애 시절 커플 반지를 버린다. 특별한 의미가 담긴 물건도 미니멀 라이프라는 이름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최소주의에 대한 열정은 집착으로 변할 수 있다. 물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물질주의의 영향이지만, 그렇다고 의미 있는 물건까지 정리해야만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무슨 주의는 인간 삶을 돕기 위한 도구여야 하지, 인간 삶을 구속하는 목적이 되면 안 된다. 과몰입은 물건 버리기를 경쟁적으로 만든다.
'이걸 버리지 않으면 미니멀리스트라고 할 수 없어!'
내가 그랬다. 미니멀리즘을 접한 계기는 이렇다. 나는 새로운 대학의 신입생이 된 이후로 대학 생활을 만끽했다. 동아리를 5개나 가입했고, 학교 국제교류에도 참여했다. 근로장학생을 했고, 동아리장을 맡았고 과대를 겸했다. 나는 대외활동과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나를 번아웃으로 몰고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연애 실패한 이후 전의를 상실했다. 더는 내가 벌인 일을 책임질 여력이 없었다.
'정리해야 한다' '정리해야 내가 산다'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힐끗 보았던 책의 제목을 떠올렸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물건을 하나하나 버리는 연습을 했다. 엉망진창이었던 방은 2주도 안 돼 깨끗해졌다. 나는 미니멀리즘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포기하면 편하구나'
깨달음이 왔다. 더 이상 버리지 않아도 괜찮을 물건까지 버렸다. 정신이 맑아졌고, 와 이것까지 버려도 괜찮은가? 어? 버려도 아무 일 안 일어나잖아? 하는 신기함에 미니멀리즘은 계속됐다. 효과는 확실했고, 나는 미니멀리즘을 신봉했다. 더 이상 나에게 스트레스 주는 것은 없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도 알아차릴 정도가 되어 한마디 거들었다.
"형 결벽증이야?"
나는 그때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방은 내 관할이지만 거실은 공동 시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거실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원룸을 구해 기숙사를 나왔다. 그때 나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여자친구 때문에 자취하는 거 아니냐는 사람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미니멀리스트로서 의지의 발로였다.
자취하면서 나는 미니멀리즘을 완성할 수 있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주변 동생의 말처럼 결벽증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SNS와 연락처까지 정리했다. 물건뿐 아니라 현실 인간관계에서도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주변 사람들과 트러블이 일어날 때 나는 무력했다.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건데, 이전보다 더 큰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그럴수록 더 작은 삶, 더 좁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느꼈다.
미니멀리즘은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 나는 자퇴까지 고민했다.
'내가 꼭 직업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지방에서 한 달 동안 필요한 돈은 60만 원 내외에 불과했다.
'아르바이트하며 살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뻗쳤다.
나는 그 시기 물건만 버린 것이 아니다. 관계만 정리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학업에 관한 의미도, 내 인생의 방향까지도 버려버린 것이다.
「넌 어떤 것까지 버릴 수 있어?」 미니멀리스트의 자격 20.02.27.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