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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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주변 동생의 말처럼 결벽증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대와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건데, 이전보다 더 큰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그럴수록 더 작은 삶, 더 좁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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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퇴까지 고민했다. '내가 꼭 직업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 시기 물건만 버린 것이 아니다. 관계만 정리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학업에 관한 의미도, 내 인생의 방향까지도 버려버린 것이다.
평생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산다 해도 나쁠 것 없다 생각했다. 지방에서 한 달 사는 데 필요한 돈은 월세 20만 원에 생활비 40만 원. 직장이 아닌 알바 자리에서 일한다 해도 생활에 허덕일 리는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혹은 아주 늙은 다음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 그것이 자본주의 임노동제의 숙명이다. 그러나 숙명이 노년에게도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보장은 없다. 우리는 시간당 임금을 받으며 생활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업가와 투자자, 예술가뿐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향한 열망은 돈에 대한 욕심도,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심도 버리게 했다. 삶의 질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어느 수준의 삶의 질을 내 것이라 인정할 것인가.
【왜, 왜 살아야 하는가. 살아있기 때문에】
그 밖의 답은 모두 버려졌다. 얼마만큼의 시간을 아껴서, 노동하지 않고 그저 살아있는 시간을 확보할 것인가, 그것만이 남았다. 신태순의 책 <나는 1주일에 4시간 일하며 천만 원 번다>를 읽었다. 보험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일주일 4시간만 일하고도 1,000만 원을 번다는 사업가 이야기였다. 이어 팀 페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읽었다. 그는 신태순보다 먼저 미국에서, 4시간 일하는 삶을 주창했다. 오하라 헨리의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기로 했다>를 읽었다. 그는 도쿄에서, 주 이틀만 일해 월 9만 엔(약 90만 원)을 벌어 생활한다. 도유진의 <디지털 노마드>를 읽었다. 그녀는 재택근무를 하며 매번 생활의 터전을 옮겨 다닌다. 나는 그들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다.
책 몇 권으로 가치관이 달라지는 경험은 우습지만, 그것이 나에게 일어났다.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팔지 않고, 공간적으로 제약받지 않는 일,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도움이 될 기술도, 세상에 기여할 아이디어도, 세상을 기쁘게 할 월등한 재능도 없는, 내가, 어떻게 그런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 그리고 공간적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희소한 것과 교환할 재화가 있을까. 결국 나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내다 버렸던 가치들과 기능들을, 고물상처럼 주섬주섬 더듬어가며 주워섬겨야만 했다.
「평생 편의점 알바를 하며 산다 해도」 나는 재화가 필요하다 20.02.28.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