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에 쓰는 첫 번째 이야기
"와, 뭐 직업을 여러 번 바꿨네요."
"아, 네... 이것저것 좀 많이 했습니다."
"난 한 길만 걸은 사람보다 이렇게 다양하게 해 본 사람이 더 좋아요."
지금 회사에 입사할 때 내 이력을 보고 대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도 너무 감사했고 지금도 여전히 감사하다. 난 그때 줄줄이 이어지던 서류 탈락과 면접 탈락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상태였으니 저 말과 함께 주어진 합격 목걸이는 복권 1등 당첨과 맞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송작가를 시작으로, 마케터, 에디터, 헤드헌터, 드라마 보조작가... 그리고 다시 콘텐츠 작가로 돌아갔다.
주변에선 "역시, 작가를 해야 하는 운명이구나"라고들 한 마디씩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운명이라 칭할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난 어쩔 수 없이 다시 작가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작가'로 다시 돌아가기는 죽는 것만큼 싫었다. 매번 새로운 걸 생각해야 하고 그 마저도 컨펌받지 못하면 또 새로운 거에 더 새로운 걸 생각해야 했다. 모든 일에 '정답'이 있을 순 없지만, 뭔가를 입력하거나 법으로 정해져 있는 다른 일과 다르게 '작가'의 일엔 정답이 없는 것들이 많았다.
소설을 읽어도, 드라마를 봐도, '호불호'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붙는 것처럼 '글'이란 건 읽는 사람마다 보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강했고, 난 눈치 보며 그들의 '호'를 맞추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 평소에도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일을 하면서까지 눈치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작가가 된 건, 솔직히 취업이 간절해서였다. 헤드헌터로서의 미래가 불분명했고 난 매달 생활비를 꾸역꾸역 해결하며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다. 소속되어 있는 서치펌에서 헤드헌터로 일하는 게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작가'는 사실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작가로 일한다 하더라도 그건 부업이지, 본업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리크루터, 인사팀 등 다른 업종을 찾아봤다. 그나마 헤드헌터의 경험을 살려 지원할 수 있는 곳은 그런 곳뿐이었다. 하지만 경력 2년으로 30살이 넘은 나이에 어디를 들어가는 게 쉬울 리 없었다. 난 매일 아침 일어나 100곳이 넘는 곳에 지원했고, 불합격의 고배를 매일 같이 마셨다.
이젠 정말 지원할 곳이 없어서 마지막의 수단으로 남겨둔 '작가'쪽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헤드헌터 경력을 살려 지원했을 때보다는 더 많은 서류 합격 전화를 받았고, 면접도 더 많이 다닐 수 있었다. 작년엔 10월에도 더웠다. 추석에도 땀이 뻘뻘 흘렸으니, 추석 전에 지금 회사에 합격한 난 그 무더위에 면접을 적게는 하루에 1개, 많게는 하루에 3~4개도 봤었다.
그러다 정말 물러날 곳이 없을 정도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다 눈물 자국을 보일 정도로 힘들어졌을 때 지금 회사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처음 접해보는 분야, 작가를 해본 건 맞지만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경제, 금융 정보들.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그 분야에, 익숙한 '작가'의 타이틀을 달고 다시 빠져들기로 마음먹었다.
올인, 하시겠습니까?
인생을 올인하듯, 그렇게 난 다시 한번 '작가' 심지어 '금융 콘텐츠 작가'에 올인했다. 앞으로 향후 몇 년간 다시는 회사를 뛰쳐나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올인, 더 이상 돈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경제관념 올인, 그리고 다시 작가로 매일 아이디어 늪에 살며 고통을 즐기며 살겠다는 마음 "올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난 벌써 10개월째 한 회사에서 1인분? 혹은 그 이상을 해내며 아주 즐겁고 재밌게 다니고 있다. '작가'로 이렇게 행복하게 회사를 다녀본 적이 있던가? 그 정도로 지금 회사는 좋았다.
"뭐가 좋아?"라고 물으면 줄줄이 좋은 점을 나열해 말하겠지만, 그러나 그 좋은 점이 상대방의 귀엔 별로 와닿지 않겠지만 일단 내가 출퇴근을 10개월 동안하고 있다면 그건 좋은 회사가 아닐 수가 없다.
다만 아직 작은 회사라 성장해야 한다는 부담감, 적은 인원으로 각자 맡은 업무량이 많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그 정도는 참아낼 수 있다. 출근 시간이 있고, 퇴근 시간이 있고, 되도록 야근을 지양하는 '작가'를 쓰는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 심지어 4대 보험, 연차까지 있는 회사에서의 '작가' 자리는 귀하고 귀했다.
다시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사실 살고 싶다는 발버둥이었다. 생활고로 죽고 싶지 않다는 발악, 내일을 행복하게 맞이하고 싶다는 간절함, 죽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 나를 매일 '죽고 싶게' 만들었던 '작가'라는 직업이, 이렇게 다시 나를 '살리는' 직업이 될 줄이야.
역시 인생은 짧지 않고, 뭐든지 살아봐야 알게 된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걸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되는 것도 이런 이유겠지. 조심스레 이런 이야길, 퇴근 후에 꺼내 본다.